노 대통령이 지난 연초 기자회견에서 전국 2백75개 지방자치단체의 「장선거」를 『연기하자』고 제의했을때만도 그것이 「3·24총선」후 정국을 결정적으로 경색시키는 최대의 현안이 되리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노 대통령으로 하여금 「연기결단」을 내리도록한 청와대의 참모진들은 두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대통령의 제의를 합법화해야 하는 민자당쪽에서도 총선을 코앞에 두고서 공천과 절대 다수의석 확보란 발등의 불로해서 「장선거 연기」야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식이었다.
그것을 합법화하지 못했을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심도있고 차분하게 생각하고 서둘러 대처하려했던 노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공교롭게도 그때 국민여론 또한 「장선거 연기제의」에 반대보다는 찬성하는 쪽이 우세한듯 했었다. 총선과정에서 마저도 뜨거운 이슈가 되지 못했던게 그때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3·24총선」에서 민자당이 과반수보다 2석이 모자라는 1백16석을 얻는데 그침으로써 결과적으로 총선에 참패하면서,「장선거 연기」 제의는 합법화 절차를 추인받지 못한채 「6월30일」이란 법적 시한을 넘기고 만 것이다.
정부쪽에서는 14대 국회의 임기가 개시되는 5월30일이후 7일만인 6월5일 「장선거 시한」을 못박은 지방자치법 부칙 2조를 재정하기 위해 정부 발의개정안을 국회에 내놓기는 했다. 민주·국민 두 야당이 누구 좋으라고 그에 응했겠는가. 이미 때를 놓쳤던 것이다.
정부·여당의 합법화 추인조치는 적어도 절대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던 13대 국회에서 단독이든 탈법이든 처리했어야 했다. 선거후 어떻게 되겠지 한 무모함과 14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처리하겠다는 안이한 전략이 여당입장에서 보면 일을 꼬일대로 꼬이게한 꼴이 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연기군의 관권선거 폭로사건으로해서 야의 「장선거실시」 주장은 백만원군을 얻은 격이 돼버렸다.
그렇다면 야가 주장하는 「장선거=공정한 대선 절대보장」 논거의 타당성은 어느정도나 되는 것일까. 지자체의 장을 선거로 뽑은후에 대선을 치른다고 하면 지자체장은 임명된 장과는 달리 대선에 말그대로 초연할 수 있을까.
정당의 공천이 허용되는 15개 시·도지사가 소속정당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선거의 공정·공명에만 전념한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동시 선거란들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잘못하면 중앙당의 도책 내지는 시·군·구 지구당책으로 전락할지도 모를 시·도지사와 시장·군수사·구청장이 선거를 치르게 된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임명제하에서보다 선거운동이나 간여가 더 노골화될 소지가 클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정치·행정·의식풍토를 전제로 해서 볼때 말이다.
만에하나 그렇게 된다면 지자체장 선거가 대선에서 여·야 어느편에 유·불리할 것이냐는 「3·24총선」의 지역별 득표상황으로 미뤄 판단이 어렵지 않을듯도 하다. 문제는 여쪽에서 「장의 선거」 실시를 아킬레스건처럼 생각한다는데 있고,야 또한 그것을 꿰뚫어보기에 「장선거 실시」가 아니면 경색된 정국을 대선때까지 몰고 가겠다는 정략에 있다할 것이다. 대선포기 위협론이 제알 야당에서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우리가 지방자치를 빨리 정착시키고 그러기 위해서는 장선거도 가급적 앞당겨야 함은 긴 설명이 필요없다. 그것을 합법적으로 연기시키지 못한 정부·여당의 잘못은 그래서 크다.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할 책임은 그래서 더욱 막중한 것이다.
야의 주장이 힘을 얻는 것도 그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치더라도 장선거 연장이란 정국의 아킬레스건이 의회정치의 상징인 국회자체를 함몰시키고 정치전체를 없게하는 유일무이한 절대가치가 돼도되는 것인지는 여·야 정치권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3당 대표가 그 해답을 못찾고 대선까지 간다면 국민들이 표로 정답을 제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자체장 선거는 많은 정치적 가치중에 하나일뿐이지 그게 결코 전부일 수는 없는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