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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병」과 「한국정치」/김영작 국민대·국제정치학(목요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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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병」과 「한국정치」/김영작 국민대·국제정치학(목요진단)

입력
1992.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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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민족의 쇠망기에는 그 쇠망의 원인이 되는 병리현상의 증후군이 나타난다. 일컬어 「나라병」이라 한다.한때 「영국병」이란 말이 국제사회에 널리 유포되더니,요즈음은 「한국병」이란 말이 유행어 처럼 돼버렸다. 정말 요즘 나라 돌아가는 모습과 정치의 꼴을 보면 진짜 「한국병」이 무엇이고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실감케 한다.

○「미국병」과 「러시아병」

하기야 미국에도 「미국병」이 있다. 과연 미국이 폴 케네디 교수의 주장처럼 쇠망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아니면 조세프 나이 교수의 주장처럼 복원력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수년래의 논쟁에 성급한 결론을 내리긴 쉽지 않다. 그러나 쇠망론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지금의 미국사회에 이제까지 가장 중요한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청교도 정신」이 점차 사라져가고,과소비,과이민,과소송에다 40대 중반이면 이혼율이 50%에 달하는 가정파탄과 가정적 가치의 파괴가 미국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함께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경제력의 증강을 위해 공산주의 이념도 버리고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고 있는 러시아는 더욱 처참한 「러시아병」을 앓고있다. 한마디로 최근 러시아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나그로스트」(Naglost)와 「마피오시 부르주아지」(Mafiosi Bourgeoisie)라는 말이 「러시아병」을 상징하고 있다. 「나그로스트」란 「철면피적 방자함」이란 뜻으로,무엇이든 제멋대로 하는 무법·무질서와 부정·부패를 지칭한 말이고,「마피오시·부르주아지」란 그런 부정한 방법으로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여 의사 등 고급인력의 평균월급(미 25달러)의 4천6백배에 달하는 포셰 스포츠카(미 11만2천달러)를 타고 다니는 지도층의 「마피아식 자본주의」를 풍자한 말이다. 공산당의 붕괴,소연방의 해체에 이어 러시아사회 자체가 와해되는 현상이다. 이 병을 방치해 두고 개혁과 개방이 실효를 거둘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정치가 「병」의 근원

「한국병」은 어떠한가. 최근 이 문제를 제기한 김영삼 민자당총재는 「한국병」의 증후군으로 사회기강의 해이와 무책임,권위와 질서의 실종,불신풍조,근로와 투자의욕의 저하 등을 들었다. 그러고 보면 「러시아병」과 크게 다를바 없는 「한국병」에 관한 김 민자총재의 진단은 대체로 정확한 것 같다.

한데 김 총재의 분석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있다. 이 「한국병」이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분석이 없는 것이다. 김 총재의 문제제기에 대해 김대중 민주당대표는 즉각 『한국병의 책임은 바로 김 총재 자신에게 있다』고 반박하고 나선바 있다. 일면의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병」의 진원지는 바로 양김씨를 포함한 한국의 정치인과 그들에 의해 공전을 되풀이하고 있는 한국정치,더 엄밀히 말하면 정치부재에 있다.

미국에도 「미국병」이 있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는 것은 정치지도자간에 「미국병」을 고치기 위해 정책대결을 통한 정치적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그러하질 못하다.

제14대 국회가 출범을 한지 반년이 넘도록 국제정세는 날로 급변을 거듭하고 있는데 우리의 정치는 공전만 거듭하고 있다. 그간 여야가 한 일이 있다면 「정치 이전」의 정쟁뿐이었다.

자치단체장선거 실시여부와 최근의 관권선거 시비를 포함하여 그간 쟁점이 되어온 사안의 어느 것을 보아도 정치본연의 생산적행위라기 보다는 게임의 규칙을 둘러싼 싸움이었다. 한국의 정치는 말하자면 규칙도 정하지 못한채 시작한 권투시합같아서 서로가 자기에게만 유리한 방식대로 치고 받는 싸움판이 될 수 밖에 없다. 정치가 이 모양인데 어찌 사회기강이 서고 권위와 질서가 확립되겠는가.

○「대처리즘」을 배우라

뒤늦게 나마 김 총재가 「한국병」을 진단하고 그 치유를 위해 결의를 표명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한국병」의 가장 큰 책임이 바로 자신들에게 있다는 점과,그 치유를 위해서는 단순한 선언이나 결의의 표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국병」의 치유를 위해 필요한 것은 결코 대선전략을 위한 또 하나의 「6·29선언」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정치기능의 회복과 개혁의 실천이다. 또 하나의 「6·29선언」 만으로는 그것이 대선을 위한 「득표전략」에 그칠뿐 「한국병」의 치유를 위한 「개혁전략」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권당의 대통령후보인 김 총재는 예컨대 관권선거 방지를 위한 제도적장치 마련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영국병」을 치유한 대처 전 수상의 충고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며칠전 KBS와의 인터뷰에서 대처 전 수상은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나에게는 강한 신념과 원칙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대처리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원칙이란 선반위에 올려놓고 가끔 꺼내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늘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책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개혁을 표방하되 실천하지 아니하는 사이비 개혁정치가들을 꿰뚫어본 충고가 아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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