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순환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 백로(7일)와 추석(11일)이 지나 추분(23일)도 얼마남지 않았다. 대낮의 햇살은 아직 따갑지만,아침 저녁으로 이는 소슬바람이 한결 청량감을 준다.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맞아 모진 바람과 천둥번개 속에서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며 자라온 오곡백과의 축복에 감사한다. ◆「주여,어느덧 가을입니다」라고 독일의 서정시인 릴케는 가을의 문턱에서 기도했다. 「지난 여름은 위대했습니다」고 그는 덧붙였다. 작열하는 여름 햇빛이 달콤한 포도주의 맛을 내게하는 포도알을 영글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틀만 더 남쪽의 햇빛을」달라고 청했다. ◆바야흐로 땀흘린 여름의 보람이 결실로 응답하는 계절에 우리의 지난 여름은 과연 어떠했던가를 돌이키게 된다. 작열하는 태양은 오곡백과를 익혀준데 그친것 같지 않다. 「악의 무성」을 한편에서 키웠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치는 겉돌고 경제는 수출부진과 중소기업의 잇단 도산으로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강력사건으로 사회가 불안정해졌다. 유례없는 무더위 속에서 불면의 열대야까지 계속됐다. ◆14대 국회 첫 정기국회가 14일 열렸다. 정치현안을 에워싼 여야의 강파른 대립으로 초반부터 파행이다. 이날 열릴 예정이던 3당 대표회담이 민자당측의 요청으로 연기돼 정국은 더욱 저미하고 있다. 게다가 한준수 전 연기군수의 관권선거 폭로사건의 수사는 제자리 걸음으로,하수인이며 폭로자인 한씨는 구속됐으나 「윗선」으로 지목된 이종국지사는 사법처리가 안된 상태이다. 모든 것이 꽉 막힌 모습이다. ◆안팎으로 겹겹이 둘러싼 난제들을 하루속히 헤쳐나가기 위해서라도 늪에 빠진 관권선거 수사가 시원하게 진전되고 응분의 문책과 재발방지 장치마련이 잇달아야 한다. 김영삼 민자당 총재는 「대결단」의 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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