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들끓는 구명운동 등에 영향/김부남씨 이은 집유… 유사사건 파장 클듯/“성폭력 추방계기로” 목소리 높아9세 때부터 자신을 성폭행해온 의붓아버지를 남자친구와 함께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김보은양(21·D대 무용2)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12년동안 성적 노리개로서 피해를 당해온 정상이 참작된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성폭력 피해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여성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를 띠고 있다.
특히 9세때 자신을 성폭행한 옆집 아저씨를 21년이나 지난뒤에 살해한 김부남씨(30)에게 항소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데 이어 다시 성폭행 피해자의 정상론에 비중이 두어짐에 따라 앞으로 유사사건의 파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그러나 『김양이 남자친구와 치밀한 계획하에 살인을 저지른뒤 강도로 위장한 점 등 대부분의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된다』고 판시,실정법상의 원칙론도 무시하지 않는 자세를 보였다. 재판부의 이번 판결문에는 성폭력 추방운동을 벌여온 여성·사회단체의 김양 구명운동과 한양대의대 김광일교수(신경정신과)의 피고인에 대한 정신감정의견서 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
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시민·학생단체들은 이번 사건을 「제2의 김부남사건」으로 규정,전국 56개 단체로 구성된 「김보은·김진관사건 공동대책위」를 만들고 8만여명으로부터 가두서명을 받아 재판부에 제출하는 등 활발한 구명운동을 벌여왔다.
또 법정증인으로 출석한 한양대 김 교수는 『김양은 가정내 강간 및 폭력 피해자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폭력의 노예화」 과정을 거치면서 특수한 정신질환에 빠져 살인을 계획하거나 실행에 옮길 정신적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사실관계만 따져보면 단순한 형사사건에 불과하지만 판결이 미칠 사회적 파장과 국민적 관심을 고려,신중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며 『사건의 본질과 무관하게 성폭행 피해사실만이 지나치게 부각돼 안타까웠다』고 심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변호인측은 재판부가 김양의 범행동기와 배경 등을 참작,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을 반기면서도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데 불복,즉시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김양 등의 변호인인 배금자변호사는 『12년간 지속된 성폭행 범죄의 피해로 만신창이가 된 김양이 억압상황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기위한 유일한 방법은 살인 밖에 없었던 만큼 김양의 행위는 무죄』라며 『가족들과 상의해 빠른 시일내에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배 변호사는 김군의 행위에 대해서도 『부도덕하고 인간성이 상실돼가고 있는 사회에 항거한 용기있는 행위이므로 충분히 정상을 참작해야 한다』고 재판부의 실형선고에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인간의 최고가치인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판단,징역 12년의 중형을 구형했으나 재판부가 지나치게 낮은 형을 선고함으로써 개인적인 복수가 조장되지 않을까 염려된다』며 상고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고심은 사실관계를 판단하지 않는 법률심인 만큼 항소심 판결이 번복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만연된 성폭력의 진상이 객관적으로 규명되고,성폭력 추방을 위한 국민운동이 확산돼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고재학기자>고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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