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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문학/김성우(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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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문학/김성우(문화칼럼)

입력
1992.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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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가 끝났다. 고향은 귀성객들의 법석으로 한바탕 신열을 앓고 이제 평온을 되찾았다. 휘영청하던 고향의 만월은 다시 이지러져 갈 것이다. 고향은 그렇게 허전해질 것이다.참으로 2천만명의 대회귀는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지축을 흔드는 듯한 이 커다란 U턴. 고향은 모든 동력의 출처다. 고향을 만유의 모체 이자 존재의 원점이면서 에너지의 시원이다. 귀향은 생존의 의미를 찾아가는 일이면서 생명력의 샘물을 마시러 가는 일이다.

예부터 고향은 수많은 문학의 모티브가 되어왔다. 문학이 인간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요 생활방식의 조타라면 문학의 기필이 고향에서 시작되는 것도 당연하다.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말들이 많지만 「고향」이란 말은 더욱 아름답다. 「향수」란 말도 들으면 온몸이 짜릿해진다. 우리말만 그런것이 아니다. 외국어도 그렇다. 영어의 「노스탈지어」(nostalgia)와 독일어의 「하이마트」(heimat) 「하임베」(heimweh) 같은 낱말들은 모국어 같은 친근감이 있다.

고향만큼 유어가 많은 말도 드물다. 같은말을 되풀이 쓰기가 아까워서 얼마든지 빌려 쓸 수 있는 동의어를 만들어냈다. 고구·고리·고산·고원·고토·향관·향국·향리·향원·가산·구리 등등. 이 다어성은 고향은 그만큼 문학적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웬만한 시인치고 고향을 노래한 시 한두편 없는 사람은 없다. 정지용의 「고향」이나 「향수」는 널리 알려져 있다.

고향이 주제가된 시는 특히 옛 중국에 수두룩하다. 당시에서 이백의 「고개를 들어 산에 걸린 달을 바라보고/고개 떨구며 고향생각을 하네」(거두망산월 저두사고향)라든가 두보의 「올봄도 어느새 지나가 버리고/어느날에나 고향에 돌아가려는고」(금춘간우과 하일시귀년) 등은 명구로 남아있다.

소설에서도 작품의 무대가 자기 고향인 경우가 많다. 김동리 만해도 초기 대표작인 「무녀도」와 「황토기」는 현장이 그의 향리인 경주일원이다.

우리나라 소설작품 가운데 고향물로 한때 크게 애독된 것에는 이기영의 「고향」이 있다. 1930년대의 이 작품은 만인의 고향인 농촌과 만인의 향인인 농민의 모습을 그린 수작으로 꼽힌다.

중국의 소설중에서는 노신의 단편 「고향」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이 명편은 작자가 1919년 절강성 소홍의 고향에 오랜만에 귀향하여 집을 정리하고 북경으로 이주하던 때의 체험을 담은 것이다. 어릴적 친구가 자기를 「선생님」이라 호칭하는 소리를 듣고 사람과 사람의 상거에 실망한다.

중국의 현대소설로는 애무의 「고향」이 유명하다. 농민에 내재한 반항정신을 그린 장편이다.

고향이라면 동양적인 개념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서양에도 물론 고향은 있다.

투르게네프는 소설 「그 전야」에서 『내가 고향을 사랑한다고? 고향말고 사랑할 것이 무어란 말인가』라고 말한다. 시인 예세닌,휠던린 등에게는 각각 「귀향」이란 명시가 있다.

서양문학의 명작이란 것들도 작가의 고향이 작품속에 용해된 것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작품과 고향을 밀착시킨 것이 토머스 하디다. 그의 소설 「테스」도 그렇지만 특히 생가 부근의 에그돈 황무지를 배경으로 한 「귀향」은 고향의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섬세한 묘사가 압권이다. 이 작품은 도시적 정신과 전원적 정신의 갈등이 주제지만 결말은 도시적 정신에 대한 전원적 정신의 우위를 암시한다.

여러 예술형식 가운데서도 고향은 문학과 제일 친근하다. 샤갈의 「나와 마을」처럼 고향이 그림의 주제가 영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히 흔치 않다. 노래로는 많다. 우리나라의 「고향의 봄」같은 동요나 「고향생각」 같은 가곡도 그렇고 특히 대중가요는 「타향살이」를 비롯하여 「고향초」 「고향설」 「고향만리」 등 옛 노래의 히트곡일수록 고향타령이다. 그러나 이 곡들은 가사때문에 고향노래다. 결국 문학인 셈이다.

노래를 봐도 그렇듯이 요즘의 문학은 자꾸 고향과 멀어져 가는 경향이다. 시는 모더니즘과 함께 고향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비는 도시의 포도위에나 내리지 시골집의 추녀 끝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문학의 도시화요 실향이다. 문학이 현대인의 사고나 생활양식과 동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더라도 항상 인간의 시발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귀향정신이다. 사람은 아무리 타관에 오래 살아도 향음을 고치지 못한다. 철만 되면 우리나라 전 인구의 절반이 고향을 찾아 움직이는 것은,그것도 갈수록 줄지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것은,도시화에 대한 반작용이다. 문학은 이 반작용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수많은 가출인들의 귀심을 달래줄 고향을 문학이 지켜주어야 한다. 문학속에 고향이 있다. 고향속에 세계가 있다. 위대한 세계문학은 대개 향토문학이라 했다. 고향문학의 상실이 두렵다.<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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