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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의 한·일 방문연기 통고(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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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의 한·일 방문연기 통고(사설)

입력
1992.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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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갑작스런 한국·일본 방문연기 결정이 동북아에 새로운 긴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옐친 대통령의 극동 2개국 방문연기는 민감한 현안이 없는 한국보다는 일본에서 특히 관례상 있기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관례상 있기 어렵다는 것은 일본의 경우 이미 합의된 공식 방문을 불과 나흘 앞두고 연기결정이 통고됐기 때문이다.그러나 일본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이러한 형식 절차상의 관례보다는 더 깊은 외교적 이해타산에 있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 옐친 대통령은 한국측에 방문연기의 이유로 「국제적 상황변화와 산적한 국내문제」를,일본측에 「국내문제」를 꼽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오간 외교적 논쟁의 경위로 봐서 쿠릴열도 영유권 문제가 연기결정의 핵심에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모스크바로부터의 보도에 의하면 옐친 대통령은 일본측의 소위 「북방 4개섬」중 우선 2개섬을 넘겨주는 선에서 일본방문을 성사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일본의 반응은 종전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냉담한 것이었다.

옐친 대통령 일본 방문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한마디로 말해서 4개섬 영유권과 경제원조의 돈보따리를 맞바꾸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안으로 엄청난 곤경에 빠져있는 옐친 대통령에게 흰 깃발을 들고 오라는 요구나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영토문제는 어느 나라나 가장 민감한 쟁점이다. 다시 말해서 옐친 대통령이 국내에서 곤경에 처해 있을수록 「양보」하기 어려운 문제가 영토문제다.

일본이 쿠릴열도와 돈보따리를 맞바꾸자고 소리높여 주장한 것은 국제사회의 실질적인 이해타산으로 보더라도 미숙한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관심은 그러나 일본의 행동양식 보다는 옐친 대통령의 「충격요법」이 갖는 정치적 의미에 있다. 옐친 대통령의 일본방문 연기는 동북아에서 일본의 일방적인 영향력 확대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외교적 포석을 뒤에 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그의 서울방문 연기가 일본방문 연기에 따르는 부수적 사항으로 결정·통고됐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옐친 대통령은 대한항공(KAL)기 격추사건의 진상을 밝히겠다는 뜻을 밝히고,또한 12월로 예정된 중국방문을 재확인하고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우리는 러시아가 배당한 쿠릴열도 연안 어획쿼터를 포기하는 대신,일본으로부터 쿼터를 양도받는데 동의한바 있다. 이것은 한국이 쿠릴열도 영유권 분쟁에 있어 중립적 입장에 서 있음을 밝힌 것이다.

동북아의 국제정치는 서서히 다원적인 「균형구조」로 옮아가고 있다. 일본과 러시아의 주거니 받거니가 이러한 움직임을 노출시킨 첫 사건이다. 우리 자신과 밀접한 사건이요,그 결말을 주시해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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