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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까워진 2백만 동포의 어제와 오늘(중국 조선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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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까워진 2백만 동포의 어제와 오늘(중국 조선족:3)

입력
1992.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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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백두산/“민족혼 서린 성산” 신 모시듯/“반만년동안 삶의 터” 대단한 자부심/“천지엔 불사의 힘” 숱한 전설 지금도밭잃고 집잃은 동무들아/어디로 가야만 좋을까보냐/아버지 어머니 어서 오소/북간도 벌판이 좋다더라/감발을 하고서 백두산넘어/북간도 벌판을 헤매인다

땅잃고 집잃고 살길도 잃은 농민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백두산 고개를 넘어 만주로 가면서 부른 민요이다. 그들에게 백두산을 넘어가는 일은 절망이면서 희망이었다.

이 민요의 1절엔 「감발을 하고서 주먹을 쥐고/용감하게도 넘어간다」는 대목이 있다. 절망속에 주저앉지 않고 용감하게 넘어가는 정신과 의지는 황무지를 일구고 벼농사를 성공시킨 개척정신으로 이어졌고 빛나는 항일독립 투쟁의 원동력이 돼주었다.

중국 조선족에게 백두산은 종교나 다름없으며 천지는 불사의 힘과 생명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백두산의 자랑스러운 장백폭포 옆으로 가파른 산비탈을 기다시피 올라가면서 중국동포들에게 물어본다. 『백두산에 왜 오셨습니가』 『백두산이라고 하면 뭐가 생각나십니까』

길림성 안도현에서 동네사람들끼리 왔다는 50대 아주머니들은 『우린 그저 백두산만 의지하고 삽니다』고 말하면서 서울 사람들이 백두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했다. 연길의 담배공장에서 40명과 함께 온 처녀는 『백두산이 있다는게 자랑스러워요』하고 대답했다.

4년전 겨울 백두산을 본 이후 올여름에 다시 찾아온 도문의 60대 농부는 『죽어서 이곳에 묻혔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우리 백두산」 예찬을 한동한 했다.

「조선산맥의 한아비」(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해설) 백두산은 민족의 발상지이며 정신사의 원점이자 생활사의 기점인 성산이다. 금수로 굽이쳐 내리는 장백의 묏부리는 저 멀리 한라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기상을 드높여주면서 그 아래 백의의 겨레를 모여 살게 했다.

모든 민족은 위대하다. 백두산 주변에서는 숙신족 만주족 여진족 물길족 말갈족 파루족 등 여러 민족이 발상됐으며 우리 민족도 부여 고구려 발해 등 여러 왕조가 백두산에 발상지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많은 민족은 모두 역사의 뒷장으로 사라졌으며 오직 우리 민족만이 반만년 긴 세월동안 백두산과 함께 살고 있다.

백두산은 그러므로 유람의 명산이기보다 근참해야할 성산이다. 이미 아득한 옛날의 사서에 「이 산에 오줌을 누어 더럽힐 수 없다 하여 산에 오르는 자는 용변후 그릇에 담아갔다」거나 「산에는 늑대와 곰 범이 있으나 모두 사람을 해하지 않고 사람 역시 감히 죽이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 성산이 86년부터 개방돼 통행증없이 다닐 수 있게 되고 90년 8월 정상까지 난 도로가 시멘트 포장돼 아무나 올라갈 수 있게 되면서 갈수록 더렵혀지고 있다. 천지에도 유람의 고무보트가 뜬다. 10분정도 타는데 10원(안화 1천5백원)을 받는 고무보트의 한족주인은 조선족과 한국에서 온 사람들의 천지에 대한 애착과 사랑을 잘 알고 있다. 서투른 우라말로 『조선족이면 천지에 와서 이 배를 타야 한다』고 손님을 끈다.

천지 앞에서 한복으로 갈아입고 찍는 기념사진은 2장에 6원. 사진사들은 「백두산 천지」라는 작은 팻말을 세우고 돈벌이에 여념이 없다. 물가에는 휴지와 과자 부스러기 깡통따위가 함부로 버려져 있다.

정상에 있는 길림성 기상국 장백산 천지 기상대의 업무담당 직원 조광수씨(43)에 의하면 한여름 관광철에 백두산에 오는 관광객은 하루 7백∼8백명. 9월이면 벌써 눈이 내리고 한겨울에 영하 42도까지 내려가는 백두산에서 매년 5월28일부터 10월1일까지만 근무하는 조씨와 같은 직원들은 백두산의 산지기나 다름없다. 7명중 2명이 조선족이다.

1년 단위인 백두산 근무가 올해로 4번째인 조씨는 『이 산에서는 더러운 숨을 내쉬는 것도 조심스럽다』면서 백두산을 단순한 관광명소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백두산의 신비가 벗겨지고 천지의 비밀이 과학적으로 규명돼 가면서 이제는 천지에 괴물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러나 백두산은 여전히 숭엄하며 전설이 살아 숨쉬는 산이다. 하루에도 천변만화하는 날씨는 용왕들의 싸움 때문이다. 「동해용왕·흑룡강용왕·천지용왕은 의형제였다. 동해용왕과 흑룡강용왕은 천지용왕의 초대연에 참석했다. 흑룡강용왕이 천지용왕의 애첩에 흑심을 품고 겁탈했다. 그때부터 흑룡강용왕과 천지용왕의 싸움이 벌어졌다. 작은 싸움일때는 가랑비가 내리고 큰 싸움일때는 소나기가 퍼붓고 천둥이 친다」

이런 백두산 전설이 연변쪽에만 2백여개 있다. 전설과 설화의 핵심은 어느것이나 천지이다. 천지는 곧 천지인 것이다.

백두산으로 오르는 길의 아득히 깊은 계곡에는 지난해 낭떠러지로 굴러 50여명이 사망한 버스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어 성산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가다듬게 한다.

잠들기가 아쉬운 백두산의 밤에 폭포소리 냇물소리는 베갯속을 울리며 파고든다. 민족의 연선함을,겨레의 삶과 생명이 유구하고 무궁함을 일러주는 소리이다. 잠들지 않은 배두산의 물에는 다함과 마름이 없다.

천지의 북쪽 터진 각래로 계곡을 따라 1.3㎞가량 흘려내려온 물은 가슴속의 환희가 터지듯 갑자기 폭포가 되어 산을 울리며 68m아래 낭떠리지로 떨어진다. 그리고 거침없이 흘러 내려간다.

흰 독을 엎어놓은 것같은 장백의 산정모습과 백색의 상쾌한 풀빛은 민족의 바탕색깔이 되었다.

그 청정함과 순결함 신성함을 기려 겨레는 흰색을 좋아했고 중국인들이 장례때나 입는 흰옷을 즐겨 입으며 고난의 삶을 견디고 이겨왔다.

잃는 것이 있거나 찾을 것이 있는 겨레는 백두산에 오를 일이 있다.

뭣이든 잃었다면/여기에 와 찾자/심지어는 하나밖에 없는 조상까지도(연변시인 한창희의 시 「백두는 의젓해」)

◎등장하는 동물들 주로 흰색/“백색미가 우리민족 미” 입증/조선족의 전설연구 연변대 김동원교수

연변대 출판사 부총편집(부사장)인 김동원교수(51·조선어문과)는 연변지역의 대표적 구비문학연구가. 김 교수는 백색미를 조선어 설화·전설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는다. 김 교수에 의하면 만주족의 설화·전설에는 민족 자부감의 상징 동물인 뱀과 새가 많이 등장하며 한족의 경우에는 복록을 추구하는 심성의 표현으로 용과 여우가 많이 나온다.

이에비해 조선족의 경우 백사슴 백호 백두루미 백발노인 백노인 백장수 등 흰색이 주로 등장한다. 김 교수는 이같은 경향을 윤리·도덕적 추구의 반영이라고 분석한다. 거란족의 「금사」에도 「백두산엔 흰 짐승이 살고 있다」는 신성성의 표현이 나오지만 우리 민족만큼 백색미를 추구하는 민족은 없는 것이다.

김 교수는 조선족 특유의 백색미외에 다른 민족과 공통된 북방계 설화의 특징으로 ▲원시적인 미(종교적 색채가 적고 동·식물의 의인화가 많다) ▲남성적인 미(용맹·옹혼하고 동적이다) ▲비극적인 미(주인공이 인민의 동조와 사랑을 받는다) 등을 들었다.

김 교수는 또 신라의 전설이 아름답고 세련된 것과 달리 백두산 지역의 설화·전설은 거칠고 원시성이 살아있으며 때로는 지나치게 생활적인 측면이 드러난다고 비교했다.

42년 길림성 화용현에서 태어난 김 교수는 중국 민간문예가협회 연변분회부주석이며 「조선민족민간문학개론」 등 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특별취재반

임철순차장(사회부) 강진순기자(사회부) 조상욱기자(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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