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사회 결집시키는 신앙” 확인/넘기 어려운 「체제간 절벽」 느껴평양은 아름답다. 도시계획이 잘돼서 많은 푸른 숲과 정성껏 가꿔진 공원들,시원스레 뚫린 차도,멋을 부려 지은 현대식 고층건물들이 사이좋게 어우러져 보기 좋았다. 좁은 땅에 아귀다툼하듯 건물들이 마구 비집고 들어선 서울과 달리 평양은 넉넉한 아름다움이 있다.
평양시민은 겉으론 보기엔 행복하고 명랑했다. 「세상에 부럼없어라」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말은 거리곳곳의 간판들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입에서 신앙 고백처럼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평양은 파산지경」 「북한은 행복조차 강요되는 땅」이라는 그간의 보도들에 익숙한 기자로서는 그들의 「행복감」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더욱 기이한 것은 이 모든 행복의 원천을 당과 수령에 돌리는 것이었다.
「당과 수령과 인민은 한몸이다」 「수령은 인민을 믿고 인민은 수령을 믿는다」 「위대한 수령은 인민을 위해 쉬지않고 일하시는 자애로운 어버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기자를 도운 안내원 김혜련씨(41·근로단체 출판사 기자)는 「수령님은 이제 연로하시니 좀 쉬셔도 될텐데…. 수령님을 생각하면 저절로 존경의 마음이 우러난다」며 「수령은 조선의 하느님」이라고 말했다.
평양은 조선의 하느님께 대를 이어 충성을 맹세하고 영광을 보내며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간판과 기념물들로 가득차 있다. 금강산에서 우리 대표단은 거대한 암벽에 가로 세로 10m 이상 깊이 70㎝ 이상으로 새긴 수령과 지도자에 대한 찬양을 봤다. 위대함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한 「만년대계글발」이라고 했다. 수령과 지도자가 스쳐간 곳은 모두 사적지였다.
5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있은 북한 종군위안부 생존자와의 좌담회에서 증언에 나온 4명의 할머니들은 「나같은 것까지 거둬주시는 당과 수령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행복이 어찌 있었겠느냐」며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무덤이 코앞인 노인들의 눈물은 거짓처럼 보이지 않았다. 6일 주석궁에 초대받았을 때 북한 대표여성들은 수령을 직접 만나는 감격에 겨워 흐느꼈고 평양산원 김진수원장(56)은 「생애 최고의 날」이라며 우리 대표단과 함께 판문점까지 오는 버스에서 내내 춤을 추며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다.
그들의 감동은 진정이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수령이 북한사회를 하나로 결집시키는 신성불가침의 핵임은 분명했다. 수령을 욕하는 것은 인민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여졌다. 『수령도 사람이다. 그가 어떻게 완벽한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모든 건설의 힘은 인민에게서 나오며 당신들이 이룩한 것은 수령의 선물이 아니라 당신들이 해낸 것』이라는 기자의 말에 그들은 『더이상 그런 말을 했다간 「추방하라」는 소리가 나올 것』이라며 화를 냈다.
북한은 왜 살아있는 하느님이 필요할까. 그들이 6·25로 쑥밭이 됐을 때 수령과 하나가 돼서 사회주의 건설을 했고 거기에 바친 피와 땀이 수령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이해해도 그것이 40년 넘게,그것도 갈수록 강해진다는 것은 부자연스런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의 체제가 흔들리면 흔들릴수록,외부의 충격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들은 더욱 수령에게 매달려서 결속을 굳히려 할 것으로 보였다. 그것이 올바른 방법이 아닐지라도 수령을 떠나면 그들의 긍지도 한꺼번에 무너질 것이고 자랑이 사라지면 체제도 쓰러질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됐다.
아름다운 평양에는 신앙심 깊은 시민들이 산다. 그들은 끊임없이 신앙고백을 한다. 그것도 똑같은 수식어와 똑같은 표정으로 열에 들떠 방언처럼 말한다. 「집단최면」 「거대한 종교집단」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렵다해서 그들을 광신도로 보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성 본연의 발랄함,이성의 힘과 판단력을 갖고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러니까 북한체제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냐. 살아남기 위해서 그럴 수 밖에 없겠지. 인간성 자체를 짓밟으며 개조하는 사회가 아니냐』며 진저리를 친다. 이런 생각을 북쪽 사람들에게 전하면 그들은 『제 코나 닦고서 남의 코를 닦으라』고 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 아래서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데 우리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주제넘게 평가하냐. 너희는 당장 살길이 없어서 연탄불 피워놓고 자살하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며 공격했다. 평양토론회는 5뱍6일 내내 즐겁고 흥겨운 잔치처럼 치러졌지만 수령이나 체제비판에 관한한 그들은 완전한 절벽이 되어 우리를 막아섰다.
그들은 완고하고 답답했다. 세계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바깥에서는 엄청난 파도가 밀려들고 있는데 평양은 조용히,흔들림없이 어버이 수령에 대해 충성과 효도를 맹세하는 것으로 그들의 울타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이 「신하된 도리,자식된 도리」라고 말했다. 평양의 시계는 언제부터 멈춰선 것일까.<오미환기자>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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