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 있으면 록카페·노래방 개업경쟁/국적불명 간판에 「과소비조장」 여론도/학생들 면학위한 정화노력 한계… 학교·당국도 적극 도와줘야대학을 상징하는 상아탑이란 말은 프랑스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생트 뵈브가 낭만파 시인인 비니의 생활태도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데서 비롯됐다. 사전에는 「속세를 떠나 오로지 학문이나 예술에만 잠기는 경지,학자들의 현실도피적이며 관념적인 연구생활」을 상아탑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School은 어원이 희랍어의 Schole로 여가를 의미하며 이 여가는 사회로부터의 「격리」 또는 「차단」을 뜻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그만큼 대학은 예부터 수도원이나 사찰과 같이 신성한 학문의 전당이었다. 오늘날에도 세계유수의 대학거리는 이같은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버드대학에 있는 하버드 스퀘어에는 50여개의 서점이 즐비하고 학생들을 위한 은행·소형백화점·레스토랑·커피점·운동기구점 등이 조용한 분위기속에 잘 정돈돼 있다. 특히 은행과 백화점의 경우 하버드라고 해서 대학에서 직영하는 곳도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촌은 어떤가.
대학생과 교직원의 주머니만을 겨냥한 상혼이 만든 대학거리는 과소비와 향락,무질서가 뒤덮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 11월11일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지는 아시아판에서 한국인의 과소비를 비판하는 기사와 함께 정문을 나서는 이화여대생 5명의 사진을 싣고 「돈의 노예(Slaves to Money) 이화여대생」이란 설명을 붙였다.
이화여대측은 뉴스위크사에 과소비와 무관한 졸업기념사진을 무책임하게 게재하게된 경위에 대한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총장명의의 서한을 보냈다.
뉴스위크사는 다음호에 정정기사를 실어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당시 이화여대에는 대학 주변을 정화하고 과소비를 반성해야 한다는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이화여대 정문에서 지하철역 입구까지는 오래전부터 명동을 뺨치는 쇼핑중심가로 자리잡았다.
○과소비조장 목소리
89년 노점상 일제단속이후 싼값에 옷가지 장신구 등을 팔던 영세상들은 모습을 감췄으나 외국기업에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는 패스트푸드체인점과 편의점이 잇달아 들어섰다.
유행을 앞서가는 형형색색의 의상실과 액세서리점 중에서도 대학생들에게 미국군사문화의 찌꺼기를 상품으로 파는 곳도 있다.
입구에는 모형 M16 자동소총과 성조기를 들고있는 마네킹이 미군복 차림으로 손님을 맞고 있다.
미군복을 본떠 만든 아미 룩(Army Look) 계통의 장신구 소품 등을 판매하고 있는 이 상점의 종업원들 차림새도 미군복일색이다.
진열대에는 미군용 탄띠,탄피,수통 등의 장비와 성조기를 보란듯이 내놓고 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이 상점에 대해 『건전한 대학문화를 해치므로 취급 상품을 바꾸라』고 수차례 항의했으나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을뿐 아니라 지난 1년간 매출실적이 인근에서 선두를 달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세대 서강대 등 신촌일대 다른 대학주변의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서점은 찾아보기가 힘들고 록카페 다방 가라오케 의상실 당구장 전자오락실 노래방 등 유흥시설이 잇달아 문을 열어 대학가의 환경은 공해에 가까울 정도이다.
이들 상점들의 간판들도 외래어나 국적불명의 합성어,신조어 등으로 아무렇게나 만들어 붙여 혼란스럽다.
사하라,콜렉션,프리타임,빠리지엔느,보그,칼빈,클라인,카운트 다운 등 수많은 외래어간판 가운데에서 아름다운 우리말 옥호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연세대 국어운동학생회가 지난해 11월 신촌일대에서 조사한 결과 경양식집 카페 등의 70%,의류점의 95%는 외래어 간판을 달고 있었다. 우리말 간판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86년 총 9백34개 점포중 우리말 간판은 6백5개(65%)였으나 88년에는 7백74개중 4백68개(60.5%),90년에는 8백19개 중 4백27개(52%)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체증 유발도
연세대앞 이면도로에는 대형음식점들이 잇달아 들어서 교통체증을 유발할 뿐아니라 술집과 여관 등이 번창하고 있어 캠퍼스 주변의 환경이 날이 갈수록 황폐화되고 있다.
연세대 총학생회 한 간부는 『대학내의 수업환경 개선도 중요하지만 학교앞에 무질서하게 형성한 상권이 건전한 대학문화를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대학인들 뿐아니라 행정당국에서도 대학가다운 거리로 만드는데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정문쪽은 관악산 등산로의 시작으로 주말이면 인파와 차로 뒤덮이며 후문쪽은 낙성대 유원지와 연결돼 캠퍼스 분위기를 흐리곤 한다.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해간 뒤 동숭동 시절의 낭만과 대학촌의 정취는 사라졌다. 오히려 신림동과 봉천동 일부에는 술집 여관 당구장 오락실 가라오케 등이 즐비하게 생겨나면서 신흥 유흥가로 변했으며 신림4거리 일대에는 여관만 1백여곳이 넘고 있다.
대학생들이 싼값에 막걸리와 소주잔을 기울이던 신림동 골목의 녹두거리에는 유명하던 청벽집 등 선술집이 없어지고 호프집 당구장 오락실 카페 등이 불야성을 이뤄 학생들은 이곳을 「신림 레저타운」이라고 부르며 자조한다.
서울대 총학생회 박우보 인권복지위원장(21·외교 3)은 『대학주변에 건전한 휴식공간과 레저시설이 없어 학생들의 발길이 자연히 술집이나 전자오락실로 향하게 된다』며 『총학 차원에서 대학문화 정립과 대학촌 정화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학가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노래연습장의 경우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장소로 각광받고 있으나 일부 업소의 장식에서 왜색이 짙고 영상음반과 기계가 일본제품이어서 일본어 자막이 그대로 나오기도 한다.
부산대생들은 최근 대학주변에 산재한 각종 유흥업소와 노래연습장,양담배 자판기 등을 추방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특히 주거지역내에 있는 노래연습장의 폐쇄를 요구하는 공개요구서를 시장앞으로 보냈다.
부산대 총학생회는 지난 7일 하오 교내에서 「소비향락문화 척결을 위한 실천대회」를 연 뒤 학교 주변에서 3시간여 동안 거리홍보 캠페인을 벌였다. 학생들은 이날 「주민과 학생이 하나되어 건전한 대학문화를 조성하는데 앞장서자」는 내용의 유인물 2천여장과 스티커 1천4백여장을 배포한 뒤 음식점과 노래연습장 등을 돌아다니며 학원정화운동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했다.
고려대 주변의 풍경도 최근 4∼5년 사이에 급속하게 변모해 24시간 편의점 등 왜색문화도 대학정문앞까지 진출했다.
특히 이공대 캠퍼스로 올라가는 안암로터리에서 개운사 입구까지에는 록카페 가라오케 당구장 노래연습장 등 2백여개의 유흥업소가 난립하고 있다.
이공대생들은 지난 4월 자발적인 모임을 갖고 록카페 노래연습장 업주에게 업소이전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는 한편 관할구청장과 경찰서장 앞으로도 호소공문을 보냈다.
학생들은 이들 업소 출입을 자제하자는 대자보를 수시로 붙이고 있으며 이달말로 예정된 정기 연고전때는 이공대 진입로를 대학거리로 지정하고 「거리 축제」를 열어 각종 문화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이 대학 총학생회 문화국장 이혜경양(23·간호 4)은 『사회전반적으로 놀이문화의 부재속에 대학인 스스로 건전한 대학문화를 만들지 못해 교육환경이 점점 나빠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비교적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성균관대도 주변환경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지난 7월말 유일하게 남아있던 석촌서림마저 비디오 아트점으로 바뀌었다. 학교앞 도로 양쪽에는 대형전자오락실과 카페 노래연습장 등이 즐비해 대학로가 아니라 반학문적인 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연세대가 80년이후 각종 외부단체의 교내집회와 시위로 몸살을 앓아왔다면 경희대의 캠퍼스는 아늑하고 쉴곳이 많아 외부인들이 오히려 학교환경을 훼손하기도 한다.
○행정대책 하루빨리
일반인과 타대생은 물론,고교생까지 술에 취해 대학구내로 들어와 고성방가를 하는가하면 때로는 패싸움까지 벌어져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여학생은 혼자 귀가하지 못할 정도이다.
총학생회 차원에서 규찰대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학교의 지원이 거의없어 어려움이 많다.
총여학생회 사무국장 이경선양(22·사학 4)은 『한달이면 2∼3건 정도의 성폭행사건이 외부인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며 『그렇다고 외부인의 학교 출입을 완전 통제할 수도 없고 학교 앞의 유흥업소는 계속 늘기만해 이렇다할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성신여대 앞을 처음가보는 사람은 깜짝 놀란다.
돈암동 이면도로를 따라 성신여대로 가다보면 속칭 카페촌이 초저녁부터 네온사인도 요란하게 영업하고 있다.
밤이 깊어가면 오토바이 폭주족이 질주하는가하면 술에 취한 고교생들이 패싸움을 벌여 난장판이 되기 일쑤이다.
서강대 김순기교수(경영학)는 『초중고 앞에는 학교정화구역을 설정하면서도 대학촌에 유흥업소가 난립하는 것을 방치하고 있는 당국의 무신경이 한심스럽다』면서 『학교 안팎의 교육환경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건전한 대학문화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학문발전까지도 저해하게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유승우·김현수·장현규·남대희·이성철·김병주·이진동기자 (사회부)
최종욱기자(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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