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권선거를 양심선언한 한준수 전 연기군수가 강제구인돼 검찰수사도 본격화의 길로 들어섰다. 법치국가에서 검찰의 소환에 연거푸 불응한 끝에 공권력에 의해 강제구인되는 사태란 정치적 쟁점이 될지언정 법적으로는 그 불가피성을 전면 부인할 수 없겠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함을 각오하고 준비해야 한다. 야당 당사의 기물을 파손하면서까지 일단 법을 집행했으면 수사와 뒷마무리에까지 시종일관 법과 양심에 철저해야지,용두사미로 끝나서는 안됨을 거듭 일깨워 두고자 한다.강제구인 이후가 중요함을 유달리 강조하는데는 나름의 충분한 이유가 있다.
모두가 냉철히 생각한다면 양심선언후 강제구인 직전까지의 사태란 법의 차원을 떠나 당장 어느쪽이 한씨의 신병을 장악하느냐는 식의 전초전이자 몸싸움에 불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씨의 선언을 얻어낸 야권으로서야 사안자체가 민주법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엄청난 관권선거 부정인 만큼 선언효과의 극대화를 노렸던 것이고,과거의 예에 비추어 사건축소와 잠재우기에 나설게 뻔한 공권력에 맞서 당장 눈앞의 법을 어기면서라도 한씨의 신병을 넘겨주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국의 태도는 어떠했던가. 시효가 눈앞에 있는데도 당초 검찰은 한씨의 신병을 확보,진술을 듣고서야 본격 수사에 나설 수 있다고 고집했었고,정부·여당은 사실부인과 함께 신병을 검찰에 넘기지 않는 야당을 비난만했던 것이다.
그렇게 따져볼때 강제구인이야말로 야당 할일은 끝났고 당국마저 더 이상의 폭로 입막음을 위해 최종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사건의 종착점이 아니라 시발점인 것이고,문제는 지금부터 비로소 엄정히 파헤치고 풀어가야 한다는 당위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또하나 지적할 것은 이번 파동의 진상에 대한 결론과 여파가 국민정서상으로나 정략차원에서는 사실상 끝났다는 느낌이 없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과거에 얼마나 자주 속아왔고 법질서가 문란했으면 공정한 수사와 법절차를 거치기도 전에 결론과 진상을 미루어 짐작하는 병폐에 우리 사회가 빠져 있을까를 생각하면 「관계기관대책회의」 정도에 의존해온 역대 정권에 원초적 책임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런 병폐가 사회적 고질이 되었을 때 초래될 무서운 부작용에 대해서도 심각히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당국이 콩이라해도 팥으로 여겨 비웃는 냉소주의가 만연하고,통치권이 저꼴인데 우리마저 법을 에누리없이 지킬 필요가 있겠느냐는 투의 무법·무질서가 확산될 때 나라장래는 어떻게 되는가.
그런 의미에서 강제구인 이후 당국의 엄정수사와 정직한 뒷마무리는 이번 파동의 실제적 진실을 파헤치는 차원에 끝나지 않고,우리 사회의 결집력을 좀먹는 냉소주의·무법·무질서를 되돌릴 계기를 마련한다는 각오마저 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과 사리가 그러한데도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이번 파동의 수사를 충남도에 한정,폭로한 한씨를 중벌하고 도지사를 처벌 또는 해임하는 선에서 마무리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구체적으로 수사대상이 충남도내의 불법선거자금 조성과 수수·전달과정에 치중되고 있을 뿐 안기부·내무부와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연루된 구조적·조직적 관권선거 혐의에 대해서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런 걱정이 사실로 드러날 때야말로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걷잡을 수 없는 악순환이 빚어진다.
정부·여당 뿐 아니라 야권은 지금부터라도 정권·정략차원을 떠나 나라 장래를 위해 이번 기회에 관권선거의 악습을 뿌리뽑을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의 실현은 강제구인 이후의 수사에서 시작된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국민들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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