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교세력 압력에 공산체제 재건노력 무너져소련이 공중분해된후 공산체제의 재건에 앞장서온 중앙아시아 타지크의 라흐몬 나비예프 대통령(60)이 7일 사임함으로써 이제 강경보수 세력이 발붙일 곳은 구소련 땅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지난해 8월 소련 쿠데타가 불발로 끝난지 한달여만에 타지크내 공산세력을 재결집,카드레딘 아스로노프 대통령 체제를 무너뜨리고 권좌에 오른 나비예프는 소련권 전역의 탈공산 흐름도 아랑곳없이 정통공산체제를 고수해왔지만 회교 근본주의 바람앞에서 끝내 맥없이 무너졌다.
나비예프의 인생역정을 되돌아보면 그의 골수공산주의자적 성향을 확연히 엿볼수 있다. 그는 크렘린내 강경보수 세력의 부침과 동일한 인생행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브레즈네프 정권말기(82년) 공화국 총리직에 오른 나비예프는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서기장 시절 공화국 최고실권자인 공산당 제1서기를 맡아 타지크 공화국을 통치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개혁과 개방정책을 내세워 크렘린내 강경보수 세력을 권부에서 몰아내면서 나비예프도 공화국 제1서기직에서 축출됐다.
정치적 재기를 노리던 그는 91년 5월 고르바초프 정권의 보수화를 틈타 타지크 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에 당선됨으로써 또다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나비예프가 골수 공산주의자의 성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은 지난해 불발쿠데타 직후.
그는 당시 시대흐름을 좇아 공산당 제1서기에서 대통령으로 말을 갈아탄 아스로노프 정권이 공산당의 불법화를 선언하자 공산당 세력을 집결,아스로노프를 몰아내고 공산체제를 부활시켰다.
이에 11월에 치러진 민주적인 대통령 선거에서 개혁파 후보를 근소한 표차로 물리치고 민선 대통령에 당선돼 정통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그는 즈비아트 감사 후르디아 그루지야 대통령,아야즈 무탈리보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급변하는 정치경제적 정세를 파악하지 못했다. 시장경제 체제로의 이행,회교세력의 등장에 보수공산주의 이념으로 맞섰던 것이다.<이준희기자>이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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