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민중당 공동대표인 김낙중씨 등이 북한으로부터 거액의 공작금과 지령을 받고 오랫동안 간첩활동을 해 왔다는 국가안전기획부의 발표는 우선 그곳에 담긴 내용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랍고 걱정스럽다. 발표에 의하면 이번 사건은 분단이후 북한이 가장 많은 자금을 들여 김씨 등을 통해 연방제 통일론을 전파하고 보안법 철폐 등을 지원해온,대대적인 대남 공작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충격적인 일이다. 이로써 북한은 한편으론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에 따른 화해의 제스처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남 선동·교란을 획책하는 이중성을 그대로 드러낸 셈이 된다.이번 사건은 과거 안기부가 숱하게 발표했던 일반 간첩 및 이적·친북 행위들과는 내용과 규묘면에서 색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통일이론가이자 재야 지도급 인사의 한사람인 김씨가 북한으로부터 2백10만달러라는 거액의 공작금을 받았다는 것,그리고 그 돈을 민주당의 창당과 여러 재야단체의 운영자금으로 쓰고 특히 지난 선거에서는 18명의 민중당 후보를 지원했다는 점 등이 국민을 놀라게 한다.
특히 북한이 김씨를 통한 민중당의 당권장악 등으로 합법적인 전위당 건설에 나섰던 것이며,후보지원을 통한 원내 진출기도가 실패하자 오는 대통령선거에도 일련의 대비를 서둘러 왔다는 분석에서 우리는 북한에 대한 해묵은 경계심을 일깨우게 된다. 이같은 일련의 공작적 상황은 60년대 후반과 70년대초에 걸쳐 북한이 대남 교란적화의 지하거점으로 소위 통혁당 구축을 시도했던 것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 사건의 시대착오적 특성을 읽을 수 있다. 90년대라는 변혁의 시대조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남한의 민주화 개방화의 「틈」을 노릴 수 있다는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통일에 관한한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정을 가진 진보적 지식인으로 행세해왔던 김씨가 실은 북한의 하수인으로서 공작금을 받고 저들의 지령에 따라 움직여 온 「36년간의 고첩」이었다는 당국 발표에 깊은 실망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면서도 그같은 발표내용과 당국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민주화 개방화로 사회분위기가 느슨해졌다고 하지만 북한의 대남 선동·교란에 대한 경계와 대비는 정부수립 이래 국가안보의 제1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신분이 노출돼온 김씨 등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었음을 어떻게 해서 이제까지 적발하지 못했던가 하는 안타까움이 그 까닭이다. 더구나 북한이 장관급의 거물 공작원을 세차례나 남파,모두 1년4개월간 서울에 거주하면서 거액의 공작금을 넘겨주고 지령을 내리며 유유히 활동했다는데 경악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일부 재야인사들의 반응과 같이 이번 사건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진보적인 재야세력의 도덕성을 실추시키려는 전략이나 제2공안 정국조성 의도에서 「조작」되었다고 믿기에는 사안이 지나치게 중대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이 안기부의 중간발표라는 점에서 빠른 시일내에 보다 구체적인 진상이 더 명확하게 밝혀지고 국민적 충격과 의혹이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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