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PKO 유감/이문희(화요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PKO 유감/이문희(화요칼럼)

입력
1992.09.08 00:00
0 0

다같이 월남전에 참가했으면서도 미국과 우리의 경우는 「그후」가 판이하게 다르다. 물론 참전의 동기나 경위,규모가 전혀 다르니 비교할 것은 못된다 하더라도 미국의 시달림은 정말 엄청났다. 십수년간 무려 2백70만명이 참전,5만8천명의 전사자를 냈고 줄잡아 1천5백억달러를 들이고도 결과는 참담한 패배와 불명예였다. 미국사회의 곳곳을 그 후유증이 쑤셔댔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혹자는 독립이후 이 나라를 지탱해온 미국적 가치를 송두리째 흔들어놨다고도 하고 오늘날 미국병의 근원이 월남전에서 비롯됐다고도 한다.전쟁이 끝난지 8년이 지난 1982년 워싱턴에 월남전기념비(차라리 전사추모비가 옳다)가 세워지고 그해 향군의 날 처음으로 참전용사들의 시가행진이 있었을 때 신문들은 「비로소 귀환병사들을 미국시민이 받아들였다」고 썼었다. 그때 웨스트 모얼랜드 장군을 앞세운 행진이 워싱턴의 컨스티투션가를 지날 무렵 시민들의 박수에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하던 참전용사들의 모습에서 이 나라가 얼마나 오래 월남전의 앙금을 씻지 못해왔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정확이 1964년 9월22일 월남의 붕타우에 1백40명 규모의 이동외과병원을 파견한 이래 1973년 3월14일 주월 한국군 사령부가 돌아오기까지 9년간 모두 31만명이 참전,그중 4천6백24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참전의 경위나 결과에 대해 자유로운 논의나 평가가 있었다고는 결코 볼 수 없다. 그때의 여건이 이를 허용치 않았고 「그후」 또한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월남」은 늘 전사상이나 이미지 등 부정적 측면보다는 경제진출,군전력 향상 등 긍정적이 쪽이 강조되어 나타났다. 월남이 그후 중동진출로,더 나아가 우리의 해외진출의 바탕이 됐고 이것이 70년대의 성장과 이어졌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월남파병의 교훈

하지만 이젠 「우리의 월남」에서 간과됐던 것에 대해서도 눈을 돌릴 줄 알아야겠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시각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좀더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과거사에 대한 조명일 것이다. 뒤늦게나마 파월에 대한 온전한 답을 갖는 것이며 그것은 앞으로를 위해 반드시 있어야할 과정이기도 하다.

월남전을 소재로 한 소설 「하얀전쟁」은 파월의 당사자인 한 병사의 심중을 이렇게 묘사했다.

『언젠가 저 곳에 살던 대통령은 그가 이 민족을 위해 옳고 보탬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들을 월남으로 보냈다. 국제적인 체면이나,어쩌면 한국전쟁동안 우리를 도와준 미국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국가의 복지를 위해서… 그까짓 이유가 무슨 상관인가. 우리들이 목숨을 바쳐 그 대가로 벌어들인 돈이 나라의 발전과 현대화를 위한 밑거름 노릇을 했다니…』 소설의 주인공만이 아닌 얼마나 더 많은 병사들이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에 대한 답을 누구도 지금껏 해준 일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직 고엽제에 시달리는 파월장병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른다. 보상에 대한 아무런 수단도 없는 「해외참전 전우회」란 곳에 피해를 호소해온 사람이 2천4백여명이 된다는 보도뿐이다. 뒤늦게 피해신고를 받는 과정에서 파월장병의 참전기록 상당부분이 제대로 보관조차 안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만 드러났다.

지난 90년 한국일보와 인터뷰했던 하반신마비의 한 파월용사는 『월남 전상자는 보훈행사 때도 끼일 자리가 없다. 파병의 잘잘못은 정책입안자가 져야 할 일인데…』하며 달라진 주변분위기를 원망하듯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월 15만원의 국가연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3천여명의 월남 전상자중 한 사람이었다.

○정부시각에 의문

정부는 지난주 또하나의 해외파병을 결정했다.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의 참가다. 유엔의 일원이 됐으니 그 만큼의 기여는 당연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여론인 것 같다. 그러나 그 규모의 PKO팀에 5백40명의 보병이 따라가야 한다는데 언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보병활동이 본령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어떤 지역에서 어떤 임무를 맡게 되느냐에 달라지는 문제이다.

하지만 정작 미심쩍은 것은 보병의 규모가 아니라 PKO를 보는 우리 정부의 시각이다. 만에 하나 또하나의 베트남쯤으로 보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감출수가 없다. 「분쟁국가와 관계증진」이니 「군사적 해외활동 경험축적」이니 귀에 익은 말들에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지금 12개 PKO 활동지역에는 무려 61개국에서 참가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방글라데시,네팔에서 가나,피지까지 다양한 국가들이 참가하고 있다. 일본이 주변국의 아우성을 무릅쓰고 PKO 참여를 강행한 것은 「군사적 해외진출」의 길을 터놓자는데 있었다. 레바논·유고에서 보듯 PKO가 지역분쟁을 속 시원히 해결한 예도 없다.

그야말로 국제사회의 성원으로 그 의무를 다한다는 생각으로 PKO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1개대대쯤이야」하고 쓸데없이 힘을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PKO 참여 어느나라와도 다르게 남북대치라는 특수한 상황을 아직 매듭짓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편집담당 상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