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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화의 재회/김성우(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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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화의 재회/김성우(문화칼럼)

입력
1992.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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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우리나라와 살갗을 맞대어온 유일한 나라다. 우리와 국경을 접해온 나라는 중국 밖에 없다. 수천년동안 체온이 서로 통하고 맥동을 함께 느껴온 사이다. 두나라의 관계는 그만큼 밀접하면서 또한 미묘하다.1894년의 청일전쟁이후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오랜 관계가 사실상 단절되었다. 일제치하에서는 우리의 주권이 없었고 광복후에는 남북 분단으로,6·25이후로는 적성국으로 한국에서 멀어졌다. 이번 한중수교는 실로 1세기만의 복원이다. 아직 지리적으로는 북한 땅이 국경을 가로막고 있으나 의식상으로는 접경이 되었다. 정치·경제분야와 함께 문화분야에서도 다시 통관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중국문화의 절대적 영향하에 있었다. 이것이 일본에도 미쳐 중국을 중심으로한 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하게 된다. 이 문화권의 가장 큰 특징은 한자의 사용이다. 그리고 유교와 불교의 보급이 공통점으로 꼽힌다. 이런 표징들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온다.

우리는 중국이라면 공맹(공자·맹자)의 나라,이두한백(이백·두보·한유·백거역)의 나라로 감동한다. 그런 정사와 풍류가 동양정신의 원천을 이룬다. 서양과는 전혀 다른 문화전통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보다는 「논어」가 친숙하고 서양문학의 어떤 작품보다도 「삼국지」가 구미에 맞는다. 우리는 아직도 이런 환경속에 산다.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한 이래 2천여년을 지내오는 동안 몇차례의 내분은 있었지만 거의 하나의 중국을 지탱해온 것은 「시경」이나 「논어」 같은 고전을 필두로 한 문화전통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집트문명이나 그리스문명 등 세계의 고대문명들이 일찍이 사멸한데 비해 중국문명만이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동일성을 지켜온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로 평가된다.

중국문화가 우리나라 같은 주변국가에 유입되던 초기에는 각국의 문화가 상당히 동질적이었지만 시대가 지남에 따라 중국문화를 원형으로 하면서도 저마다 자국화해갔다. 가령 한자만 하더라도 읽는 음이나 의미까지가 중국 본가와 우리나라,일본이 서로 달라지고 우리나라 일본에서는 자기 나라 문자를 따로 발명했다.

동아시아 문화는 같은 모체에서 나왔으면서도 이렇게 분화되어 가면서,그러나 모체와의 탯줄을 끊지 못한채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해왔다. 그것이 한동안의 이산끝에 한 혈족처럼 재회하게 되었다.

청일전쟁은 새로운 중국의 한 기점이 된다. 양계초는 『중국이 처음으로 4천년의 꿈에서 깨어난 것은 갑오의 전란(청일전쟁)부터의 일이었다』고 썼다. 근대유럽의 사상이 중국에 소개된 것은 이 전쟁이후다. 이 때부터 중국에서는 서구문화의 충격에 대한 전통문화의 완강한 저항이 시작된다. 서구사상을 받아들여 낡은 규범을 떨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의욕과 유럽 열강의 문화적 침략에 대항하여 독립성을 지키려는 의지가 충돌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신해혁명에 이어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으로 중화민국이 탄생한다. 그리고 마침내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에 이르게 된다.

이 청일전쟁 이후가 우리나라와 관계 단절의 시기다. 그동안 중국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특히 사회주의하의 새 중국은 문화적으로 옛 중국과 절연한 것일까. 한자는 간자화되었다. 그러나 혁명도 문화의 유전인자를 바꾸지는 못했다. 중국문화의 깊은 뿌리는 면면히 이어져 온다. 우리는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우리 문화의 모형과 손을 다시 잡게 되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상면도 있다. 문학 하나만 놓고 보아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의 중국문학은 사실상 노신에서 끝나 있었다. 그런데 중국의 현대문학은 바로 노신의 「광인일기」에서 시작된다. 우리로서는 그 이후의 중국 현대문학사가 통째로 낙장이 되어온 셈이다. 모순·노사·점령·파금 등의 문학이 이제 떳떳이 우리에게 다가와 노신이후의 성과를 이야기해 줄 것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이 문화적으로 단절되었던 20세기는 중국뿐 아니라 동양문화권의 각국이 서양문화를 받아들이는 시대였다. 일본에서도 중국문화 유입의 오랜 일방통행에서 중국 유학생들의 일본쇄도 등 역사상 처음으로 역류현상이 생겼고 이와 함께 탈아론이 나왔다. 아시아의 고루에서 벗어나 서양에 눈뜨자는 움직임이었다. 이제 서양 경도의 한 세기가 가면서 동양문화가 다시 하나의 문화권으로 결속하게 되었다. 지금 동양정신의 각성이 어느 때보다도 제고되어 있다. 복아탈구의 시대가 온다.

중국은 국토의 면적이나 인구수에 있어서 전 유럽과 맞먹는다. 한국·일본을 포함한 동양문화의 크기가 서구문화 보다 작을 것 없다. 유럽에서 황화론이 제기된 것이 청일전쟁 말기였다. 그 1세기만의 지금은 유럽이 문화적 황화를 겁낼 때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회복은 세계의 정치질서 뿐 아니라 문화질서를 재정돈하게 되었다.

한어에서 문화란 무장에 반대하는 개념이다. 폭력이나 위력을 쓰지 않고 문덕으로 백성을 교화시키는 것이 문화다. 서양에서 말하는 컬처(Culture)와 매우 다르다. 우리는 이런 다른 정의의 문화의식을 갖고 있다. 문화가 곧 평화다. 동북아의 평화는 새로운 동아시아 문화권의 창출로 이룩될 것이다.<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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