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EC 삭감 요구와는 이율배반/“농업부문 협상 원점 회귀” 불가피부시 대통령의 선거용 농업정책이 돌파구를 마련을 눈앞에 두고 있던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의 최대 걸림돌로 등장했다.
부시 대통령은 2일 태풍 앤드루호로 쑥대밭이 된 사우스 다코타주 재해현장을 둘러보는 자리에서 미 농민들의 소맥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10억달러 규모의 정부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미 농무부는 더 나아가 미 정부보조 계획에 따라 소맥 등 곡물을 구입한 국가가 구입 농산물을 구 소련 공화국들과의 구상무역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부시 행정부의 이같은 농업부양 정책은 즉각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진영으로부터 선거용 선심공세라는 거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미국 농산물의 자국내 유입을 우려해온 유럽공동체(EC)를 비롯,일본,아르헨티나 등 세계 각국이 부시 행정부의 즉흥적인 농업정책을 규탄하고 나섰다.
EC집행위 대변인은 『미국의 이번 조치는 EC에 대한 농산물 전쟁 선포에 해당하는 중대한 행위』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10억달러의 보조금이 일시에 지급될 경우 미 소맥이 국제농산물 시장에 대거 흘러나와 국제소맥 가격의 폭락으로 이어지면서 세계 농산물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EC의 비난성명을 한꺼풀 벗겨보면 UR협상의,조기타결을 위해 EC의 농산물 보조금을 삭감을 강력히 요구해온 미국이 오히려 농산물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는데 대한 배신감이 깔려있다.
자크 들로르 EC집행위원장이 4일 UR협상과정에서 EC측이 농산물 부문에서 양보하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긴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실제로 7년째로 접어든 UR협상은 지난 90년 12월 농업보조금 삭감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EC측이 첨예하게 대립,지금까지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농업보조금 문제를 보는 미국의 논리는 간단하다. EC측이 농업부문에 거액의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국제농산물 유통이 크게 왜곡돼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자유롭게 형성돼야할 국제농산물 가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최대 농산물 수출국가인 미국의 속셈은 유럽국가들의 농업보조금을 삭감,유럽의 경쟁력을 약화시킴으로써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자국의 무역적자를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은 그간 UR협상 과정에서 EC측에 압력을 가해 상당한 양보를 얻어냈었다.
EC 농업장관들은 지난 5월 미국의 압력에 견디다 못해 농업보조금의 29% 삭감을 골자로한 농업개혁안에 합의했다. 구체적으로는 오는 96년까지 곡물재배 농가에 대한 정부보조금을 3% 삭감하고 곡물가격과 쇠고기 가격을 각각 29%,15%씩 인하하며 수입농산물 가격을 EC농산물 가격과 맞추기 위해 수입관세를 인하한다는 것 등이다.
미국은 당시 「옆구리 찔러 절받기」인 이같은 EC의 동의를 UR 조기타결을 위한 돌파구 마련에 중요한 청신호라며 환영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재선위기에 몰린 부시 대통령이 표를 의식해 앞장서 농업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함으로써 UR협상의 최대현안인 농업부문은 또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부시 행정부는 이번 조치를 현시점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UR협상 과정에서 부머랭 효과를 자초하는 악수를 두었다는 비난은 면하기 어렵게 됐다.<이진희기자>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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