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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총재가 뭘 보여줄까/정달영(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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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총재가 뭘 보여줄까/정달영(화요칼럼)

입력
1992.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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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로서 당총재직마저 거머쥔 김영삼체제가 미구에 보여주리라고 하는 다음번 「수」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다. 총재 취임연설에서 그가 밝힌 제1성들은 다소간의 미사여구로 포장된 원칙과 자세였을뿐 구체적인 정책이나 실천 가능한 조치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87년 대선에서 노태우대통령을 36%의 득표율로나마 당선하게 하는데 6·29 선언이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을 믿고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김영삼의 육이구」가 무엇이 될 것이냐에 당연하게 주목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모르기는 해도 바로 그같은 관심과 주목,그리고 대선 득표전략과 직결된 정책의 제시라는 점이 김영삼총재 자신과 그의 진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그러나 과연 「김영삼의 육이구」는 가능한 것일까. 김 총재가 보여줄 개혁 청사진을 두고 신문들은 여권내부에 이견과 갈등이 있는 것으로 전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보­혁 갈등이 있는 것처럼,또 어떤 경우에는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 수준이 문제되는 것처럼,또다른 어떤 경우에는 기득권층의 완강한 거부자세가 있는 것처럼 알려진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 상황은 그다지 심각한 형편은 아닐는지 모른다.

정작 심각한 상황은 「6·29만한 물건이 과연 있겠느냐」에 있을 것이다. 곰곰이 따지고 보아도 탐탁한 것이 있을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87년의 6·29선언에 대해서 학자들은 「시민사회의 성장과 그 저항에 직면한 권위주의 국가권력의 퇴조현상」으로 풀이한 일이 있다. 그로써 얻어진 것들중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땅의 권력창출이 「총구로부터 투표로」(from bullet to ballot) 옮겨졌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력의 존립기반이 더이상 총구일수는 없으며,시민사회로부터 자발적 동의를 얻지못한 어떤 권력도 정통성이 없게 됐다는 점이다.

김 총재의 「육이구」는 6·29를 가능하게 했던 시민사회의 성장과 저항의 연장선상에서 출발해야 당연하다. 우리 시민사회의 의식수준과 행동역량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작은 정부」의 시사

그런 점에서,김 총재가 총재 취임연설에서 제시한 「작은 정부」는 좋은 시사를 준다고 할 수 있겠다.

「작은 정부」는 단순히 규모가 작다거나,하는 일을 줄이는 개념이 아닐 것이다. 「작은 정부」의 진정한 뜻은 정부의 규제와 간섭으로부터 경제의 운용을 폴어준다는데 있다. 구체적으로는 경제에 자율성을 회복시켜주는 일이다. 「정부로부터 민간으로」 「중앙으로부터 지방자치로」 「위로부터 아래로」의 권한이양이 그 모습이 된다.

국가의 간섭을 줄여서 성공하고 있는 사례는 엊그제 정주영 국민당 대표가 찾아가서 만난 멕시코의 살리나스 대통령을 들 수 있다. 만년집권당인 제도혁명당의 대통령으로서 「경제기적」을 이룬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살리나스의 정책은 「과감한 민영화」와 「중앙정부의 간섭 없애기」 두마디로 요약된다. 특히 정부의 간섭을 없애는 문제는 시민사회의 역량에 대한 전적인 신뢰에 바탕을 두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김 총재는 최근의 이동통신 사업자선정 문제에서 특유의 돌파력을 국민에게 보여준 바 있다. 그 전말은 국민으로부터 위탁받은 권력은 어떤 경우에도 그 권력을 사물화할 수 없다는 교훈을 준 사건이 되었다.

지금 개혁의 청사진을 보여주어야 하는 김 총재로서는 「6·29 비슷한」 조치는 물론 이동통신 문제에서 실증해 보여준 것에 맞먹을 만한 어떤 매력적인 실천과제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김 총재의 개혁결단을 기다리는 현안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다가오는 대선이 김 총재 개인에게 있어서도 건곤일척의 기회라고 할때 결정적인 승부수가 없을 수 없다. 6·29 보다도 오히려 더 확실하고도 겸손한 비전이 없으리라는 법도 없는 것이 아닌가.

○결단과 돌파의 때

언제나 조심스럽게 유의할 일은 우리 스스로도 몰라보게 성장한 시민사회의 역량이다. 김 총재는 그것에 의지해야 한다. 정치체제의 개혁 및 남북대치상황과 관련해서 「우리의 보수적인 정계체질은 한번 진보세력에 의한 도전을 받고 그 세례를 거쳐 다시 진일보하는 돌파를 이뤄야 한다」는 진보세례론에는귀담아들을 값이 충분히 있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시기 논의에 있어서 김 총재가 보여줄 자세 역시 「연내엔 안된다」는 단 한마디의 시치미떼기가 아닐 것이다. 「작은 정부」의 논리위에서도 단체장선거문제의 선편은 김 총재의 것이다.

국민은 9월이 되어도 문을 열 기색을 보여주지 못하는 국회와 경색일로를 걷고 있는 정치권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갖지 않은지 이미 오래다. 그가 누구이든 시원한 새바람을 불러내는 돌파를 보여주어야 할 때다.<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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