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첫 전파… 파란의 한국 현대사 산 증인/“미국적 이데올로기 전달” 비판불구 큰 인기「미국의 소리」(VOA) 한국어 방송이 전파를 탄지 29일로 50주년을 맞았다.
일제치하인 1942년 8월29일 「자유의 종은 울린다」라는 30분짜리 프램으로 시작된 VOA 한국어 방송은 2차대전,8·15 해방,6·25동란,4·19혁명,10월유신,10·26사태,광주민주항쟁.6·29선언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파란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해주는 주요 외국매체의 하나였다.
특히 언론 탄압이 심하던 시절 적잖은 「지하청취자」들이 파도소리 비슷한 소음과 함께 들려오는 검열되지 않은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해방직후부터 70년대초까지 거의 모든 한국의 라디오 방송들이 매일 아침 6시30분부터 10분동안 「미국의 소리」 뉴스를 중계했다. 덕분에 지금처럼 국내 방송의 보도기능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의 청취자들은 이 방송을 통해 「알고싶은 욕구」를 다소라도 풀 수 있었다.
그러나 70년대초 박정희정권이 유신을 선언하면서 VOA중계프로는 중단되기 시작했다.
73년 8월 발생한 김대중납치 사건을 「미국의 소리」가 보도해버리자 박 정권은 마지막 명맥을 유지해오던 기독교방송(CBS)의 중계마저 폐지시켰다.
그 이후로도 정부의 언론통제가 풀어지지 않았고 해외 단파방송의 청취가 간첩행위로까지 간주되는 등 「살벌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VOA 한국어 방송은 진실을 갈구하는 국내 고정팬을 확보할 수 있었고 『미국적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려 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시청률을 확보했다.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의 주요 전파송출 대상은 7천만 남북한 주민이지만 그밖에 중국에 사는 2백만 조선족과 60만 재일교포,오대양을 누비는 10만 한국선원들,그리고 세계도처에 나가 있는 수많은 한국 근로자들이 이 방송을 애청하고 있다.
VOA측은 북한에 한국어 방송 청취자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아직은 알길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북한 고위관리나 당간부들이 듣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차례 확인됐다.
미 뉴욕타임스지는 89년 7월19일자 평양발 기사를 통해 『북한 방송만 들을 수 있게된 라디오 대신 국제방송을 들을 수 있는 고성능 단파라디오가 점차 보급되고 있으며 줄좋은 북한 주민들은 「미국의 소리」를 듣고 있다』고 보도해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김영남 북한 외교부장도 작년 가을 VOA와의 단독회견을 통해 자신도 애청자라고 밝힌적이 있다.
현재 한국일보와 특약관계를 맺고 있는 VOA 한국어 방송은 매일 상오 6시30분(한국시간)부터 7시까지,하오 10시부터 10시30분까지 두차례 모두 1시간동안 전파를 탄다.<김영걸기자>김영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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