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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식씨 선친 오관영씨 행적찾기 56년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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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식씨 선친 오관영씨 행적찾기 56년 결실

입력
1992.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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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독립운동가였다”/본보 「일제문서」 기사보고 실마리/21년 11월30일자 신문서 확인/“곧 유공자 절차 밟겠다” 흥분독립운동가의 아들 오준식씨(63·경기 군포시 영정동 775)는 56년만에 아버지를 찾아낸 기쁨에 겨워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저편에 희미한 편린으로만 남아있던 오씨의 선친 오관영씨는 아들의 집요한 노력 끝에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씨가 평생의 숙제로 품고 살아온 아버지 찾기는 지난 15일자 본보 2면에 실린 「일제고등계형사 요시찰문서 첫 공개) 기사를 계기로 구체화됐다.

이때까지 오씨에게 아버지는 6척 장신의 당당한 체구,일본순사에게 손찌검도 불사하던 기개 등 단편적인 모습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아버지의 등과 허벅지 등에 인두로 지진 끔찍한 고문 흔적을 보았을때의 충격은 유독 선명했다. 고향인 평남 평원에서 아버지와 지낸 날이 3개월도 채 못됐던데다 작고할 당시 오씨는 불과 7세의 어린 나이였기 때문이었다. 고문 흔적과 어머니의 얘기로 막연한 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으리라고 짐작해온 오씨는 이 기사를 보고 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17일부터 경찰청과 총무처 정부기록보관소,보훈처,수원지방보훈청 등을 뒤지고 다니던 오씨는 경찰청 감식과에서 마침내 아버지의 전과기록을 찾아냈다.

「오관영 명치 34년(1901년) 2월8일생 평남 평원군 순안면. 대정 11년(22년) 3월11일 평양복심 공갈미수 및 총포화약령 위반 징역 3년 경성교도소. 대정 8년(19년) 5월3일 평양지방재판소 보안법 위반 태70」

실마리를 잡은 오씨는 곧이어 아버지의 구체적인 독립운동행적을 밝히기 위해 국사편찬위원회,보훈처,광주지검 등을 가 뒤졌지만 평양법원 기록은 대부분 북한에 남아있을 것이라는 얘기만 들었다. 결국 오씨는 25일 21년 11월30일과 12월1일자 동아일보 등 지면에서 선친의 행적을 찾아냈다.

「광복군본부에서 특파,평원군 순안면에 들어와 동지를 규합하고 독립을 운동」이라는 제하의 평양발기사는 선친이 동지 8명을 규합하여 군자금을 모으며 일경에 체포됐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청 감식과에 나타난 22년 재판의 해당기사였다.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를 정면으로 마주뵌 것같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오씨는 『수십년을 노력해도 조상의 귀한 독립운동을 끝내 확인하지 못하는 자손들이 수두룩한데 비하면 나는 행운아』라며 확인요청에 『다른데가서 알아보라』는 식의 떠넘기기로 일관하는 관계당국의 무신경을 서운해하기도 했다.

25년 경성교도소를 출소한 아버지를 이후에도 만주 등지를 떠돌며 독립운동을 계속하다 병을 얻어 36년 귀향한지 한달만에 35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1·4후퇴때 어머니와 3형제를 북에 남겨둔채 단신 월남한 오씨는 선친이 행적에 걸맞는 독립유공자로 역사에 기록되도록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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