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론조사 반대가 찬성 앞질러 “충격”/부결땐 「기본조약」 무효 가능성도【파리=한기봉특파원】 다음달 20일 마스트리히트조약의 비준여부를 묻는 프랑스 국민투표를 약 3주 남겨두고 유럽의 긴장감이 높아가고 있다.
전통적으로 친유럽 성향을 보여왔던 프랑스 국민이 유럽의 완전한 정치·경제통합을 구현할 마스트리히트조약에 반대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는 지난 6월2일 미테랑 대통령의 국민투표 회부결정 때만 해도 설득력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석달사이 상황은 돌변했다.
25일 동시에 발표된 4종류의 여론조사 결과는 비준이 거부될 가능성을 현실화시켜주고 있다. 이중 국영TV인 앙텐2와 파리마치지가 공동조사한 결과는 찬반이 49대 51로 나타나 처음으로 반대가 찬성을 앞질렀다.
르피가로지와 렉스프레스지는 각각 같은 결과인 51대 49,프랑스 여론조사 기관인 IPSOS,루이 해리스 조사도 52대 48로 나타나 찬반은 박빙의 차이다.
프랑스정부를 심각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은 여론조사에서 반대입장이 한번도 하락한 적이 없이 꾸준히 상승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사회당정부,특히 장기 집권중인 미테랑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통합에 따른 국가주권 및 권한의 약화,단기적인 경제적 희생,이민의 급증 등에 대한 우려가 유권자의 태도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프랑스 국민이 마스트리히트조약에 등을 돌린다면 어떤 결과들이 이어질 것인가. 르몽드지는 덴마크의 경우가 충격이었다면 프랑스의 거부는 「대재난」이 될 것이라고 표현했다. 언론들은 이미 가정법을 사용한 시나리오들을 보도하기 시작하고 있다.
우선 쉽게 예견되는 것은 마스트리히트조약에 의거한 유럽통합의 고도화 구상이 백지화되거나 최소한 조약이 대폭 수정되어야 하리라는 점이다. 독일과 함께 유럽통합의 중심축 역할을 해온 프랑스의 비준실패는 이 조약의 사실상 무효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프랑스 없는 유럽은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최소한 금세기내의 유럽통합은 불가능한 것이다. 재협상을 통한 조약의 수정 역시 각국의 이해관계가 더욱 첨예하게 노출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여진다.
경제적 측면에서 프랑스 국민의 비준거부는 프랑스는 물론 유럽 금융시장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프랑스화의 가치급락,마르크화의 강세급등,달러화의 약세가 겹쳐 외환·주식시장은 엄청난 혼란에 직면할게 확실하다.
유럽 단일통화인 ECU는 외환시장에서 사망선고를 받게될 것이며 회원국간 통화의 변동폭을 제한한 기존의 EMS(유럽통화제도)도 유명무실해져 각국은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요구를 할 것이다.
마스트리히트조약을 추진해온 미테랑 대통령 자신은 물론 독일의 콜 총리,영국의 메이저 총리는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미테랑은 조기 퇴진의 압력에 봉착하나 사임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조약비준과 관련,여야는 물론 한 당파안에서도 분열이 드러난 프랑스는 수습하기 힘든 정치·사회적 위기를 맞을 것이며 정계 재편의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밖에 미국·일본의 영향력 강화,내셔널리즘의 지배,유럽 각국의 격차심화 등이 조약비준 실패의 영향으로 지적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같은 총체적 위기감은 결국 프랑스 국민이 찬성표를 던지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68%가 조약이 비준될 것으로 예상한 반면 거부될 것이라고 본 사람은 불과 17%였듯이 찬반이 팽팽한 가운데서도 분위기는 여전히 통합대세론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시작된 찬반 캠페인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전개돼 아직 태도를 결정짓지 못한 35% 가량의 유권자를 설득하는가에 달려있다. 미테랑은 오히려 역효과를 주리라는 사회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9월3일 TV 공개토론에 나서 대국민 설득을 할 예정이다.
앞으로 3주간에 유럽의 장래와 운명은 물론 세계적 정치·경제질서가 프랑스 국민의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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