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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봐주기”… 상호지보 규제 “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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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봐주기”… 상호지보 규제 “표류”

입력
1992.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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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시간 없다”… 관련법 개정안 심의미뤄/현재 규모 백69조… 전경련등 저지 총력전/제도적 규제 화급… 6공 도덕성 기로에재벌의 금융대출 독점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중도에 무산될 위기에 몰렸다.

정부와 민자당은 26일 당정협의를 갖고 재벌그룹 계열기업이 은행 단자 보험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때 상호지급보증의 편법을 써 여신을 독점하는 관행을 법률로 규제키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검토할 예정이었으나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논의도 꺼내지 못한 채 다시 심의하기로 했다.

전경련은 이날 상오 주요 그룹 회장들이 참석한 긴급회장단 회의를 열고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한 상호지급보증 규제방침을 전면 백지화하도록 공식요구키로 의견을 모았다.

이로써 7차 경제사회 발전 5개년계획중 대재벌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의 핵심과제인 상호지급보증 규제 법제화 방침은 대통령 보고와 입법예고까지 거친 단계에서 여당의 석연치 않은 유보자세,재벌그룹의 노골적인 집단반발에 휩쓸려 심각한 진통을 겪게 됐다.

이날 당정협의 직후 경제기획원 관계자는 『당초 하도급거래법,약관규제법,소비자보호법 등 4개 법률개정안을 놓고 심의할 계획이었으나 국무회의 등 일정 때문에 시간이 없어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다시 날짜를 잡아 논의키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거래위 관계자는 『향후 기업의 경영방식이나 금융대출관행 등에 중대한 변화를 몰고 올 상호지보 문제가 걸린 만큼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재론키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공정거래법 개정 자체가 전면 유보되거나 무산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한쪽에선 재벌그룹 회장들이 지금까지의 언급회피 자세에서 돌변,상호지보 규제 자체를 전면 백지화하라고 요구했고 다른 한쪽에선 당정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논의 유보한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면 상호지보 규제법제화를 놓고 재계가 이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배경은 무엇인가.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국내 30대 재벌그룹 계열사가 제1금융권인 은행에 상호지급보증한 규모는 총 1백15조여원에 달한다. 현행 국내 금융실정상 총통화(M2) 공급규모(평균잔액)가 90조원 내외이니 30대 재벌의 금융대출 독점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30대 재벌 계열기업의 상호지보 규모는 개별기업당 자기자본의 평균 3백66%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다 단자보험 등 제2금융권 상호지보 54조여원을 합하면 총 상호지보는 연간 국민총생산(GNP)에 육박하는 1백69조여원,기업당 자기자본의 5백40%꼴에 이르고 있다.

개인이 은행 돈 몇백만원을 대출받는데도 2중3중의 연대보증을 요구하고 빚보증은 형제간에도 서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재벌기업들은 그룹계열사의 상호보증 서류 한장만으로 수백억 수천억원씩 은행돈을 내 돈 쓰듯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상오 전경련 주관으로 주요재벌그룹 회장들이 긴급 회동,「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상호지보 규제」운운 반발한 것은 말 자체로는 조금도 틀림이 없다.

도대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재벌들이 상호지보 관행을 악용,우리처럼 은행대출을 독접하는 경우가 없으므로 상호지보 규제법제화 시도 또한 유례없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날 재벌 대표들이 재벌상호지보 규제는 30대 그룹뿐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큰 부담을 안길지 모른다고 강변한 것은 「적반하장」정도를 넘어 되레 어떤 논리적 근거라도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어쨌든 이날 민자당측이 시간이 없어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심의하지 못했다는 변명은 차라리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지적이 많다.

상호지보 규제 법제화 방침은 재벌기업의 경영행태나 국내 금융기관의 전근대적 대출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케 강요하는 조치이다. 또 7차5개년 계획에 나타난 재벌정책,다시말해 업종전문화유도­연결재무제표 의무화­계열기업간 내부거래 금지에 이은 핵심적 경제력 집중방지 대책이기도 하다.

재벌 회장들이 그토록 반대했던 금융실명제를 새삼 다시 하자면서 그대신 상호지보 규제 법제화는 안된다고 비명을 지를만큼 이번 개정안은 우리 경제의 발전에 중대한 전기가 되는 제도적 장치라는 것이 경제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아무리 지금이 정권교체기에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도 한번 꺼낸 상호지보 규제방침을 다시 거둔다면 그야말로 정부의 「도덕성」이 의심받는 사태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유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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