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이 급기야 이동통신 사업권의 자진반납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로써 한달 가까이 나라를 온통 들끓게 했던 대통령 사돈기업 선정을 둘러싼 유례없는 파동도 드디어 끝장나는가를 생각하면 한마디로 만감이 교차한다.권력 특유의 오기와 거센 여론이 끝도 없이 맞부딪칠때 초래될 더 큰 혼란을 이제부터라도 막을 수 있게 됐다는 일말의 안도감이 우선 앞선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중국과의 수교가 성사되는 등 엄청난 국제적 환경변화가 예고되는 격동기이다. 경제침체가 국민을 짓누르고 있는 와중에서 정권의 임기말을 맞고 있는 시점에 소모적인 이동통신 파동이 끝도 없이 증폭됐을 걸 생각하면 누구나 아찔해진다. 그래서 이만하기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냉철히 생각을 가다듬어 보면 안도의 감정에 못지않게 씁쓸함과 부끄러움,일말의 의념마저 아울러 솟구침을 부인키 어렵다. 뻔한 이치와 길을 두고서도 억지를 부리고 험한 길을 골라가며 이끌어 국민을 골탕먹이는 통치와 행정의 전횡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며,그로인해 초래된 나라망신은 또 어떡하느냐는 답답함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이번 파동의 전말을 따져보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확연히 드러난다. 권력자가 마음을 정하면 도덕성과 여론도 예사로 무시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고,국가라는 이름의 거대한 조직과 인력이 그 결정을 바로 잡기는 커녕 맹목적 추종과 합리화에 오로지 동원될 수 있는 사회인 것이다.
이번 파동을 통해 이동통신 사업자선정 기준을 마음대로 정하거나 뜯어고치고,핵심 참모들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는 반대여론을 차단하거나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사업자선정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조차 않았다거나 청와대 회의에서 논의된 사실을 부인하는 등 거짓말을 예사로 한 사실 등이 국민앞에 여지없이 드러나지 않았는가.
땅에 떨어진 나라체면도 사실 예사문제가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통치수임을 받은 정권과 정부가 무리한 결정을 일단 내렸다가 법률적으로나 체면상 쉽게 되돌릴 길이 막막해지자 사업자의 자진반납이라는 궁색한 편법으로 더이상의 위기에서는 일단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파생된 국민적 신뢰 실추는 어찌할 것인가. 법률상으로도 얽히고 설켜 엄청난 후유증마저 내다보인다. 선경 컨소시엄에 참가한 국내·외 기업에 의해 제기될 소송사태와 막대한 배상문제가 남아있는 것이다.
여당에서는 자진반납 결정을 얻어내자 『이제는 이동통신 문제는 끝』이라며 대선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고 한다. 한건 올렸다는듯 희색이 만연해 『끝』이라고 선언만 하면 모든게 정상화된다고 과연 믿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동통신 파동으로 드러난 우리 권력운용의 맹점과 자정기능 상실,그리고 깊은 국민적 상처와 나라체면 손상을 어떻게 바로잡고 치유해 나가겠다는 건지를 진심으로 묻고 싶다.
나라일을 맡은 권력은 사리사욕을 떠나 일을 정직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혹 잘못을 저질렀으면 진심으로 바로잡고,그 과정에서 얻은 값비싼 교훈을 체질화시키는 노력도 따라야 한다.
이번 파동의 교훈은 결국 앞서가는 국민의 의식에 아직도 못미치는 권력의 후진적 속성과 반성할줄 모르는 현주소를 여지없이 드러냈다는 점일 것이다. 권력층과 정치권은 이번 파동의 교훈에 대한 깊은 성찰과 개선노력이 있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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