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본을 생각해보자.일본문화를 우리가 언제 전면 개방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지난 6월말 우리 정부는 일본에 「한국문화통신사」를 파견했다. 이 행사는 한일간의 문화교류를 정부차원에서 처음으로 공식화한 것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교류의 시발점으로 볼 수 있고 따라서 일부에서는 이번에는 전통문화에 국한되었지만 장차 대중문화까지 확대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의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7월 들어서는 한일 외무당국자의 회동이 있은뒤 우리 정부가 양국 문화교류의 활성화를 위해 일본 영화의 수입상영 허용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금까지 일본의 문화개방은 이것을 들먹일 때마다 「시기상조」란 말 한마디로 일축되어 왔다. 이 상투어에 대항할 신어를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다. 아직 이름다면 이르지 않을 그 시기는 언제인가. 언제까지나 그 시기는 가도가도 수평선처럼 저만치 있어 상조이기만 할 것인가.
반일은 우리 국민정서상 아직도 정의다. 일본을 거부하는 몸짓이면 일단 옳다. 일본을 받아들이는 것은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래서 아무도 감히 일본문화의 수용을 거론하지 못한다. 만지면 데이기라도 할듯이 조심스럽다. 델리킷하다 하여 무슨 위험물처럼 손대기를 꺼린다.
반공이 국시의 제일의였던 동안 용일은 용공 다음가는 금기였다. 지금 우리는 6·25를 사주한 구 소련과 손을 잡고 6·25때 우리 땅을 밀고 내려온 중공군의 중국과도 수교하는 마당이다. 감정의 집착만으로는 시대의 진운을 따라갈 수 없다. 일본문화를 곁눈으로가 아니라 바로 쳐다볼 때가 되었다. 피할 문제가 아니라 맞서야 할 문제다.
우리는 일본의 문화를 공연히 겁먹고 있다. 경제라면 몰라도 문화에 관한한 우리가 일본에 위축될 까닭이 없다. 전통문화에 있어서 일본문화의 원류는 한국이니라 하는 자존심만 긴 수염처럼 쓰다듬고 있자는 뜻이 아니다. 며칠전 별세한 김사엽박사가 일본 최고의 가집인 「만요슈」(만엽집)는 한반도 도래인의 작품이라는 것을 명쾌하게 밝혀냈다고 해서 우쭐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 원경이 아니더라도 현대의 순수예술에서도 음악·미술·문학의 어느 분야에서나 일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만 자랑스럽지 현재를 자긍할줄 모른다. 인식의 오식이다. 여기서 도착된 콤플렉스가 생긴다.
대중문화가 문제라고 한다.
대중가요를 보자. 일본의 대중가요인 엔카(연가)는 그 뿌리가 한국이다 아니다 하는 해묵은 논쟁을 재기시킬 생각은 없다. 우리 대중가요가 일제치하에서 일본가요의 번안곡으로 널리 불리는 사이 엔카풍에 물들었고 광복후에도 많은 곡들이 소위 「왜색조」로 낙인 찍혀 한동안 금지곡으로 묶이기까지 했지만,사실 일반대중들은 어디부터가 왜색인지 분간할 줄을 잘 모른다. 그만큼 동화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우리 가요와 일본가요는 동질성이 있다. 다같이 애수취미의 오음단음계권이다. 이성애가 「가슴아프게」를 히트시킨 이래 많은 우리 가수들이 일본에서 열광적인 반응인 것이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일본가수들이 다투어 취입하는 것이나 그것은 우리 가요가 그들에게 이국 취미의 것이어서가 아니라 동향의식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라고 일본 것이 적색일 수만은 없다. 저들은 받아들이는데 우리만 인색하기도 난처하다.
영화의 경우,최근의 어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시민의 68%가 일본영화의 수입에 반대하고 21%가 찬성이다. 반대의 주이유로는 40% 이상이 영화의 내용보다도 일본에 대한 거부감을 꼽았다.
대중음악도 그렇지만 영화에 있어서도 우리의 외래문화는 미국에 편향되어 있다. 작년 한해동안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외화 가운데 미국 메이저회사들의 직배영화가 관객의 50% 이상을 동원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우리는 미국문화를 너무 편식한다. 다양한 문화를 섭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프랑스가 문화대국인 것은 그 코스모폴리탄적인 포용력 때문이다. 모든 문화를 받아들여 자기문화를 살찌운다. 문화적 결벽은 약질로 만든다.
대일 감정문제도 있지만 우리 문화가 대응능력을 갖출 때까지 일본문화를 막아야 하는 것이 유예론자들의 주장이다. 물론 우리 문화의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러기 위해 대결해야 한다. 당당히 맞서서 대응하지 않고는 체질강화가 안된다. 피해의식에만 사로잡혀 있을 때가 아니다. 이 개방화시대에 우리만 언제까지나 해협봉쇄를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태풍은 노상 대한해협을 건너온다. 어차피 불어올 바람,태풍을 맞는 자세로 우리는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문화의 해제는 야간 통행금지 철폐 같은 것일 수 있다. 월북작가의 해금같은 것일 수 있다. 걱정했지만 아무 부작용이 없었다.
모든 문화는 인류공영의 재산이다. 어느 문화든 균점할 권리가 모든 나라의 국민에게 있는 것이다.<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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