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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광욱 선관위원장/이성춘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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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광욱 선관위원장/이성춘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2.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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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각국중 중앙선거관리기구를 우리나라처럼 헌법기관으로 격상시키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당당한 헌법기관으로 어떠한 외부의 압력도 받지 않고 선거를 관리케 한다는 취지였다.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30∼40년전과 여전해서 정부의 부속기구로 생각하는 층이 적지 않다. 이는 선관위가 오랫동안 중립적이고 독립적 입장에서 선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중앙선관위 하면 1963년 1월부터 5년간 위원장을 지냈던 고 사광욱 대법원 판사를 떠올리게 된다.

언제나 조용하면서 검소한 차림의 소박한 서민의 모습인 그는 눈치를 살피거나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원칙과 정론만을 고집하는 대쪽같은 법관이었다.

63년 10월 민정 이양을 앞두고 박정희·윤보선씨가 대통령선거에 나서 격전끝에 투표­개표 도중 야당표가 앞서자 위기를 느낀 공화당은 『야당이 부정개표를 하고 있다』고 엉뚱한 주장을 하며 개표중단을 요구했으나 사 위원장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사 위원장이 맞은 두번째 시련은 67년 7대 국회의원선거에 앞서 정부·여당의 무지막지한 압력을 견디어 내는 일이었다. 장차 3선 개헌을 위해 절대 의석의 확보를 노린 정부는 선거운동 20여일전 『별정직 공무원인 대통령과 국무위원도 특정후보를 위해 유설을 할 수 있지 않는가』고 유권해석을 요청하자 그는 대다수 법조출신 선거위원들을 설득하여 「불가」라고 해석을 내렸다. 공무원의 선거개입은 바로 부정선거라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1주일뒤 정부는 『당총재로서 대통령은 유세를 할 수 있지 않은가』고 다시 유권해석을 요청하고 선거위원들에게 설득 회유 압력을 가한 결과 사 위원장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5대 4표로 「가하다」는 번복해석이 나왔다. 이렇게 되자 정부·여당은 박 대통령의 지구당 독려유세를 비롯,금품살포와 관권개입 등 온갖 불법운동으로 억지 압승을 거뒀지만 7대 총선은 두말할 여지없이 3·15 선거에 필적하는 6·8 부정선거로 장식됐다.

선거후 국회 국정감사때 여야 의원들의 7대 총선평가질문에 사 위원장이 『명백한 부정선거였다. 관리책임자로서 국민에게 사과한다』고 용기있게 답변하면서 흐느껴 회의장을 숙연케 했던 일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필자가 사 위원장 얘기를 새삼 소개한 것은 그가 거대한 권력의 압력과 횡포에 맞서 국민편에서 힘없는 헌법기관을 당당하게 지켰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5년. 중앙선관위는 규모면에서 크게 성장했다. 직원수도 늘고 또 지방의회 의원선거를 치를 정도로 관리능력도 상당수준 향상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헌법기관답게 독립성 중립성이 어느정도 확보되었는가에 국민들은 여전히 탐탁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다. 그 원인은 역대 일부 선관위 사무처장과 상임위원에 정부의 장·차관급이나 집권당의 전문위원을 임명하고 선거인명부 작성을 지금도 내무부가 관장하는 것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6공이래 선관위가 그런대로 능동적 자세로 13·14대 총선과 일부 보궐 및 재선거,그리고 지방의회선거를 무난히 치르고 정치권의 과열운동에 경고를 하고 선거운동의 개선점들을 제시한 것 등은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14대 총선의 군부재자 투표의 부정시비,당선자가 번복된 노원을구의 재검표,버스 지난뒤에 손든 격인 법정선거비용의 초과사용조사 등은 선관위의 취약점 문제점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중앙선관위는 자체 혁신으로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여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 오는 대통령선거가 얼마나 중요한 국가적 대사인가. 헌법기관의 명예를 걸고 어떤 일이 있어도 공명선거로 이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특위의 선거법 개정작업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이 필요하다. 선거관리의 주체로서 여야를 설득하여 「공명」을 흐리게 하는 조항은 모두 고치게 하고 특히 선거기간중에는 선관위가 후보 실격과 운동중지 등 강력한 사법권을 가질 수 있게 해야할 것이다. 선거때 각후보를 초청해서 페어플레이를 다짐하는 대국민 서약모임을 주도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학같은 단아한 모습에 형형한 눈빛을 하며 신념을 갖고 바위처럼 선관위를 지켰던 사 위원장의 정신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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