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정당은 민의를 집약시키는 기능을 과연 다하고 있는가. 이같은 물음에 대해 케네디 미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지낸 역사학자 아서·슐레진거의 견해는 다분히 부정적이다. 그는 어느 외국언론과 가진 대담에서 미국의 경우 1백년전 대통령선거에서의 투표율이 80%였던게 오늘날 50% 수준만 참여하는 사실로도 동원능력의 하락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같은 정당의 기능 저하는 통신수단의 발달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국민여론이 특정 사안이 있을 때마다 당장 손쉽게 드러나는 마당에 과거처럼 자신의 주장을 나타내기 위해 정당에 가입하는 유권자수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시대적 변화에 맞춰 정치나 정당의 역할도 변화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가 쉽게 도출될 수 있다. ◆그렇다면 21세기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정당이 지향할 기능은 무엇일까. 국내·국외를 막론하고 냉전·권위체제 붕괴와 함께 새로운 갈등과 대립이 극심해진 오늘이다. 이 때문에 정당도 당연히 「사」 보다는 「공」을 더욱 앞세워 사회통합 및 지도기능을 투철한 책임의식 속에서 발휘해야 마땅한 때인 것이다. 그런 시대적 요청을 외면할 때 정당이 설 땅은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이동통신 사업자선정 문제를 놓고 나라가 온통 시끄럽다. 정당으로서는 이런 때야 말로 기능을 발휘하고 막중한 책임을 다할 절호의 기회이다. 그런데 여당은 지금 당과 정을 2분법으로 갈라놓고 책임분산과 대선에의 영향만을 따지기에 급급하다. 여론과는 엉뚱하게 다른 정책결정이 이미 내려졌는데 여당 생각은 정부와 다르다고 발뺌만해서 무엇이 달라지는건지 모르겠다. ◆야당이 결정 취소투쟁에 나서는 것은 반대여론을 업고 있으므로 명분이 분명 하달할 수가 있다. 하지만 「국조권을 발동해보라,받아주겠다」는 청와대측 응수가 나오는 마당이면 여당으로서도 책임의식을 더욱 느껴 당의 이해차원을 떠나 제기능을 회복해야 할 시점이다. 결과적으로 여야가 국회와 정치를 공전시키는 사이 어뚱한 결정이 내려졌던게 아니었던가를 국민들은 지금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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