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격한 말들이 오갔다. 이동통신인가가,그 주석의 화제였다. 다음은 그 녹음.『자네 의원병이란 말 들어 봤나. 영어로는 이아트로제네시스(Iatrogenesis). 「이아트로」는 의료,「제네시스」는 기원…』
『그거,병원에 갔다가 감염증에 걸렸다는,그런 경우 아닌가』
『맞아. 의원병은 의료가 원인이 되어서 생기는 병이지. 병원에는 온갖 환자가 다 모이고,그래서 온갖 병균이 득실거리기 때문에,병을 고치러 갔다가,자칫 병을 얻어 올 수도 있거든』
『뿐인가. 수혈을 잘못받은 사람이 에이즈에 걸린다. 에이즈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가 에이즈를 옮는다. 간염을 병리검사하던 기사가 간염에 걸린다. 게다가 약화라는 것도 있지. 그런 피해가 미국에서는 한해 1백억달러에 이른다는 추정도 나와 있어. 조심해야지』
『그런데 요즘 의원병보다 심각한 것이 정원병이래. 영어로는 프리타네오제네시스(Prytaneogenesis). 이 말은 미국에서 진보적인 글을 많이 쓰는 커크패트릭 세일이란 사람이 만든 말인데,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통치기관이 들어있는 건물을 「프리타네움」이라 부른 것이 그 조어의 어원이야. 그러니까 「프리타네오」의 뜻은 「정치권력이 있는 곳」,우리나라로 치면,중앙청더 꼬집어 말하면 청와대가 되겠는데,요컨대 정치와 권력에 기인하는 병폐,이것이 정원병이라는 거지』
『그래서,6공 말기의 정원병이 너무 깊구나이 말인가』
『그렇지. 어제 오늘 벌어진 사돈간의 이권 주고 받기를 보고 있노라니,이 나라가 앓고 있는 병의 근원을 알 것도 같고…』
『하지만,정부는 만사 공정하게 했으니,아무 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고 하던데…』
『글쎄 권력과 돈의 속사정을 가난한 아랫것이 속속들이 알 수는 없으나,이게 「공정했다」 자부해서,그냥 넘어갈 사안일까. 언필칭 국가대사요,몇조원 이권까지 걸린 사업이라면,그것은 이미 경제를 넘어선 정치요,정치에는 때가 있고,경위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나』
『하긴 사돈끼리라,경위가 바르다고는 못하겠지』
『한쪽 사돈이 좀 자제했으면 어떨까. 그 자신 새 사업으로 돈 벌 생각은 없다고 했으니,이번 일은 사돈 퇴임뒤로 미룹시다,할 수도 있잖았을까』
『모르는 소리. 30년대 경제 대공황을 당한 미국의 후버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거든. 「자본주의의 두통거리는 자본주의자(자본가)들이다. 그들은 너무 지독하게 탐욕스럽다」』
『그럼 다른 한쪽 사돈은?』
『때를 제대로 헤아렸나 싶구먼. 권력은 적시적소에 써야 하는 것이니까』
『하긴 그래. 6공 4년반의 가장 큰 병폐가 권력의 적시적소를 놓친 것이라 할 수가 있겠지』
『앞으로 남은 6개월이 더 문제지. 앞으로 6개월,말기의 권력은 이 기간을 잘 다져서,국정의 매듭지을 것은 매듭짓고,민심을 두루 다스려서,다음 정권을 누가 잡든,국정의 연속성이 보장되도록,접권 교대기 갈등구조를 최소화해야 할 것인데,지금 정부가 하는 일은 꼭 그 반대인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야』
『아무래도 좀 조급한 것 아닐까. 임기말에 업적과 모양을 너무 생각해서…』
『그런 면도 있겠지. 정신을 딴데 팔고 있는 것도 같고…. 지금 일정이 잡힌 것만 꼽아도 그렇지. 이 며칠사이 대중수교가 된다. 10월에는 대통령이 방중한다. 대통령의 3번째 유엔 연설도 이미 예정이 잡혀있다. 유럽에서 국빈이 차례로 온다. 이런 왕방·내방 잔치속에 북방외교는 마무리가 되고,동북아 정세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고속전철의 제휴선도 결정이 된다. 6대 의혹이라 이름붙은 대형사업은 강행한다. 대신 국내정치는 정기국회가 제때 열릴지,열렸다고 무사할지도 불투명하다. 그 틈에서 여·야·정·경·당·정은 갈라서기만을 거듭한다. 실정에 실망한 체제지지층마저 등을 돌린다. 그래도 대통령선거는,선관위가 따로 있으니,별문제 될 것이 없다?』
『그래서 사돈댁의 이동통신이 악재인 것은 틀림이 없지. 그러나 정부 말대로 꼭 해야할 국책사업이고,또 모든 심사를 공정하게 했다면…』
『글쎄. 공정하고,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니까. 어차피 몇달뒤,다음 정권이 재검토·재조정할 사업을 왜 서두나? 과수원에서,왜 갓끈을 고쳐매나?』
『더 심각한 것은,정치엔 형사법에서 말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안통하는 거야. 잡범은 유죄가 증명되지 않으면 무죄가 되지만,정치의혹은 혐의만 있으면,유죄야. 옛말에도 중구삭금많은 사람의 입방아가 쇠를 녹인다고 했쟎나. 그러니,꼭 동취분분구리냄새가 요란하다고 해서 말썽인 것이 아니야. 적시적소,마땅히 할 일을 마땅한 때 하고,다음 사람에게 넘겨서 마땅한 일은 마땅히 다음 사람에게 넘겨야지. 그래야 권력의 교대가 매끈하고,국정의 단절이 안생기고,뒤탈도 없고…』
『역시 권력은 잡기도 어렵지만,놓기도 어렵다. 권력을 잡는 슬기도 있어야 하지만,놓는 슬기도 있어야 한다』
『좀 진부하지만,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생각나는구먼. 프랑스의 국위를 유럽에 떨쳐서,태양왕이란 별명마저 얻었던 이 임금님이 말하기를 짐이 죽은뒤 대홍수가 있으리라. 과연 다음대에 혁명이 났지』
『노후가 더 걱정이란 뜻인가』
『글쎄』<상임고문>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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