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민족 분규… 곳곳 “시한폭탄”/독자노선 확산… 「연합」 와해 위기/러우크라 주도권 다툼도 “불씨”/소수민족 툭하면 살육… 주변국과 유대도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에게 민족문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방정식이었다. 이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다.
옐친 대통령은 지난해말 소 연방을 독립국가연합(CIS)으로 탈바꿈 시켰지만 민족문제는 여전히 체제를 뒤흔드리는 불안요인으로 남아있다.
CIS 민족문제는 역사적으로 제정 러시아가 주변 소수민족들을 강제 통합,억압해온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지난 30년대 소련의 스탈린 공산체제가 전 영토의 소비예트화를 앞당기기 위해 수많은 소수민족을 강제이주 시키는 정책을 실시했고 이들에 대한 분할통치의 일환으로 소수민족간 반목을 부추겨왔기 때문이다.
이같은 구 전제정권의 소수민족 정책은 고르바초프 전 정권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정책을 계기로 문제점들이 노출됐으며 강력한 중앙정부가 없는 CIS체제에 이르러서는 걷잡을 수 없는 민족분규로 비화됐다.
민족문제는 현재 두가지 큰 흐름으로 유럽공동체(EC)형 단일시장과 나토형 집단안보 체제를 지향하고 있는 CIS체제의 재편성,더 나아가 와해까지 재촉하고 있다.
우선 이민족간의 대규모 유혈충돌이 CIS개편을 재촉하고 있다.
지난해 쿠데타 발발직전까지 최악의 민족분규 지역이었던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사태는 크렘린궁에서 「붉은 기」가 내려지자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민족과 종교·역사·영토 등 각종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 지역은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중화기를 동원,대규모 살육전을 펼침으로써 CIS가 추구하는 집단안보 체제구축의 최대 걸림돌로 등장했다.
특히 러시아를 비롯한 CIS주축국들은 양국 분쟁의 중재에 나서기는 커녕 양국 주둔 구 소련군이 분규에 휩쓸리는 사태를 우려,병력을 소개시키는데 급급해 CIS체제의 존재의미를 무색케 했다.
루마니아계 몰도바인과 소수 러시아인이 맞붙은 몰도바 사태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미르차 스네구르 몰도바 대통령간의 휴전합의와 평화유지군 배치로 일단 진정상태에 들어갔으나 언제든지 다시 폭발할 수 있는 불씨로 남아 있다. 양민족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몰도바는 CIS를 탈퇴,인접국 루마니아와의 합병을 원하지만 일부지역을 장악한 러시아인들은 「드네스트르공화국」의 완전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CIS의 주축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주도권 다툼도 언제든지 무력충돌로 이어질 소지를 안고 있다.
특히 크림반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영토분쟁과 흑해함대 분할논쟁은 우크라이나의 민족감정과 얽혀 분쟁해결의 살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옐친 대통령과 크라프추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최근 흑해 함대를 오는 95년까지 공동관리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는 사태해결을 뒤로 미룬데 불과하다. 크림반도 문제는 아직 협상테이블에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 이 문제는 어렵게 성사시킨 흑해함대의 합의사항마저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릴 가능성이 있다.
CIS내 민족분규는 그동안 근근이 버텨온 국가연합 체제를 일순간에 폭파 시킬 수 있는 강력한 시한폭탄과 같다.
CIS체제를 위협하는 또다른 요인은 각 민족들의 「마이 웨이」(독자노선) 경항이다.
CIS체제가 각 민족간 화합과 협력을 도모할 수 없다면 제각기 뿔뿔이 흩어져 살길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아르메니아와 민족분규를 겪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의 움직임을 보면 「마이웨이」 경향을 실감할 수 있다. 공산당 출신 무탈리보프 전 대통령 체제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엘치베이 아제르바이잔 현 대통령은 자국의 CIS 참가가 「원인무효」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있다.
대신 그는 종족이 유사하고 같은 회교도인 터키나 중동국가들과 새로운 정치·경제·안보 공동체 결성을 모색하고 있다.
카자흐를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 회교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지난 5월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멘에서 열린 회교권 7개 정상회담은 CIS체게가 슬라브계와 회교권으로 양분될 수 밖에 없는 흐름을 분명히 보여줬다. 양 세력간의 역사적 상호불신이 그만큼 뿌리깊은 탓이다. 특히 중앙아시아 회교권 국가들은 오랜 세월동안 러시아슬라브로부터 수탈당한 과거의 악몽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 인구 경제력 자원 등 모든 면에서 CIS내 남북격차가 심각하다.
러시아의 CIS체제 유지 의지도 약해지고 있다.
CIS창설을 주도했던 부르블리스 러시아 국무장관이 지난 5월 러시아 벨로루시,카자흐 등 중추 5개국 연합구상을 내놓았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마디로 지역·민족·종교·경제적 관계에 따라 딴살림을 차려 상호 거북한 관계를 피해보자는 것이다.
러시아의 광활한 영토위에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1백여개의 소수민족들이 독립을 선언,러시아 연방마저도 해체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경제재건과 함께 민족주의 불길의 진화작업이 옐친 대통령 체제의 최대현안이다.
『CIS가 뭔가 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CIS체제가 출범된지 8개월 남짓 지난 지금 회원국간 협력과 분쟁회피라는 최소한의 공동분모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한 서방분석가의 지적에서 CIS의 내일을 읽을 수 있다.<이진희기자>이진희기자>
□8월 쿠데타이후 CIS
▷91년◁
▲8월19일 쿠데타 발발
▲8월23일 옐친 대통령 공산당 불법선언
▲8월24일 우크라이나 독립선언
▲9월6일 소 국가평의회 발트3국 독립승인
▲11월6일 옐친 대통령 공산당 해체 명령
▲12월8일 슬라브3국 소련 소멸·CIS창설 선언
▲12월21일 CIS체제 공식 출범
▲12월25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사임
▷92년◁
▲2월1일 옐친부시 미·러시아 정상회담
▲5월7일 러시아독자군 창설
▲5월9일 회교권 7개국 정상회담
▲5월15일 CIS집단 안보체제 창설 합의
▲8월3일 러시아·우크라이나 흑해함대 공동관리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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