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무 시달려 「학문 공백기」 초래” 기피/일부선 「벼슬」인식 파행인사 불화도/전문 경영체제 도입·행정인력 육성 적극 나서야교수에게 보직은 명예이면서 멍에이다.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 본령인 교수들이 대학행정에 얽매이거나 잡무에 짓눌리는 상황은 교수 개인의 능력발휘와 승진,대학살림의 개선에는 기여할지 몰라도 학문연구나 교수학습방법 개선에는 본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대학의 보직이 아직도 일종의 벼슬로 인식되고 보직의 잦은 변경과 교체 또는 장기재임이 교수사회의 갈등·불화 요인으로 작용하는 한국사회에서 보직교수문제는 본연의 대학기능을 저해하는 장애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대학의 행정·사무를 건학이념이나 교육목표에 맞게 기획·조정하고 처리할 수 있는 인력이 교수외에 별로 없고 대학인으로서의 교수에게 보직경험이 중요한 자산이라는 측면이 경시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 규모가 갈수록 방대해지고 행정역량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이른 지금 교수보직의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개선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학에도 전문경영체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대학은 이런 문제에 대해 일정한 합의를 이룩하지 못한 상태이며 전문경영의 제도화를 위한 기반도 마련돼 있지 않다.
지난달 12일 연세대의 12대 총장으로 선임된 송재총장은 『한국의 대학도 빨리 잠에서 깨어나 21세기를 준비해야 한다』며 『아마추어 대학관리자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76년부터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재무처장·기획처장을 거치면서 1백주년기념관 건립 등을 통해 업무추진력과 자금조달능력을 인정받았던 송 총장의 「21세기 준비론」은 앞으로 대학의 행정을 행정능력을 갖춘 「전문경영자」에 맡겨 근본적인 체질개선과 개혁을 수행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세계적 대학으로 발돋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실무형 총장시대로
「상징형 총장시대」에서 「실무형 총장시대」로의 변화를 알려주는 송 총장의 발언에 대해 교수들은 대부분 유니버시티(University)에서 멀티버시티(Multiversity)로 거대해진 대학경영을 이제는 주먹구구식에서 탈피,효율성과 전문성을 기해야 할때가 됐다고 찬동한다.
그러나 선진국형 양적구조와 후진국형 질적구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대학행정을 맡고있는 보직교수들의 실상은 이러한 이상론과 크게 괴리돼 있다. 대학의 특성을 고려할때 「교육·연구·봉사 등 대학의 3대 기능의 효율적 수행과 기획력,책임있는 평가업무를 담당할 능력을 가진 구성원은 교수 밖에 없다」는 이유로 대학의 보직은 교수들이 전담해 왔다.
그 과정에서 주요보직을 바라보는 대학사회의 시각은 「소신있게 교육행정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라는 측면보다 교수개인의 명예나 지위를 상징하는 측면이 강해졌다. 학보사주간 교무·학생·기획처장 등 본부 주요보직을 거치는 것은 대학사회에서 공인된 출세코스이다.
3공 말기와 5공때 처럼 보직교수들이 학생들과 몸싸움을 해야했던 시절에는 학생처장이 가장 「요직」이었고 총무(재무)처장도 「베푸는 자리」로 각광을 받았다. 치열한 대학경쟁시대에 돌입한 요즘은 학교발전을 책임지는 기획·교무처장의 비중이 가장 커졌다.
처장시절의 실무경험과 경력을 바탕으로 학장·대학원장을 거쳐 총장에 이르는 것은 학자로서의 권위와 함께 교육행정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조완규 교육부장관은 서울대에서 기획실장,자연대학장,부총장을 두루 거쳐 총장이 된 뒤 장관으로 발탁됐고 김종운 서울대 총장,김희집 고려대 총장 등 대부분의 대학총장이 비슷한 경로를 거쳐 대학의 정상에 이르렀다.
그러나 교수들의 보직임용은 전문성이 배려되지 않은채 원칙없이 이루어진 경우가 많아 대학규모의 팽창에 따른 변화나 다양한 대학사회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행정의 탄력성을 상실,교수사회를 우리사회에서 가장 비능률적이고 보수적인 집단중 하나로 전락시켰다.
성균관대 강신항교수(국문학)는 『초창기의 대학처럼 대학규모가 작거나 대학행정전문가가 없을 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효율적인 대학경영을 위해 보직임명이나 인사정책에서 가능한한 전공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소한 1년이 필요하나 업무파악 1년에 보따리싸는 과정 1년으로 말한다.
비전문가의 임명외에 보통 2년의 짧은 보직기간으로 인한 잦은 인사교체도 행정의 일관성과 효율적 업무추진을 저해한다.
○직제축소·조정 필요
K대 총무과 직원 문모씨는 『처장이 바뀔 때마다 업무스타일대로 좇아가다 보면 업무의 일관성은 커녕 잦은 시행착오로 기존의 업무가 퇴보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꼬집었다.
H대 강모교수(노문학)는 『처장의 경우 대학행정을 파악하려면 입학·졸업·입시 등 최임기를 채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의 경우이긴 하지만 일부 교수들의 보직독점도 대표적 갈등요인이다. 교무위원의 임기가 3년인 E여대의 경우 81년부터 90년까지 10년간 학장과 처·실장 등 교무위원을 맡았던 52명중 4∼7년간 연임한 교수가 45%나 된다. 서울대 인문대학장 소광희교수(철학)는 『보직의 장기연임은 교수들의 다양한 의견반영을 차단,무관심과 소외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고 『보직경험은 많은 교수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보직이 지나치게 많은 것도 문제이다. 사립 K대의 경우 총장이 임명하는 학과장급 이상 보직교수가 1백53명이나 된다. 전체교수가 1백90여명이니 해외파견 연구년 휴직교수를 제외하면 산술적으로 「전교수의 보직화」가 되는 셈이다.
대부분의 학과가 학과장,일반대학원과 특수대학의 주임교수 보직을 나누어 맡게하는 등 보직을 세분화했기 때문이다.
서울대 백충현 교무처장(공법학)은 보직이 늘어나는 이유를 ▲대학의 규모 확대 ▲교육단위로서의 전공분야 세분화 ▲연구소의 증가와 독립적인 연구분야의 세분화 ▲대학 및 대학연구소의 봉사기능 확장에 따른 행정수요 확대 등으로 분석한다.
백 처장은 『지나치게 세분화된 교육과 연구편제를 적절히 통폐합하는 것이 우선과제이며 교수의 관여없이도 행정지원이 가능하도록 전문적인 행정지원 체계를 갖춰 교수보직의 절대수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교수보직의 문제는 많지만 최근에는 교수들이 보직을 기피하는 새로운 현상이 번져가고 있다. 요직을 거친 교수들 조차 『한번정도는 개인적인 희생을 봉사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한 보직으로부터의 해방이 다른 보직에로의 전보를 의미할 때는 교육자이자 연구자인 교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최근 연임된 사립 K대의 이모 처장은 『보직교수로서의 업적이 연구자로서의 나에게는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2년이라는 기간은 학자로서는 공백기』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처·실장 등 심리적 보상이 따르는 보직과 달리 학과장처럼 「잡무담당」으로 취급되는 보직의 경우 교수들의 기피현상이 두드러져 대부분 나이가 젊은 순서대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번갈아 맡는 실정이다.
S대 이모처장(철학)은 『각종 모임과 회의에 불려다니다 보면 전공서적과 멀어질 수 밖에 없다』며 보직수행후 연구년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하는 식의 재충전기회가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88년 교육자율화조치이후 보편화된 총장직선제는 보직문제에 갈등을 더하고 있다. 총장이 바뀌면 본부 처·실장이 대폭 물갈이되고 총장의 선거참모 등 측근이사가 대거 기용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K대 허모 교수(철학)는 『총장 직전이후 일반교수와 학교당국으로 지칭되는 보직교수들과의 갈등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며 『총장의 생각과 다른 교수는 학교경영에 전혀 참여할 수 없고 교무회의에도 교수사회 전반의 의사가 반영된다고 볼 수 없다』고 강한 불신감을 표시했다.
○대학간 교류 바람직
보직교수로 인한 대학행정의 파행상이 우려됨에 따라 대학사회 일각에서는 지금부터라도 대학행정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성균관대 김원용교수(신문방송)는 『미국의 경우 행정·연구분야 교수가 완전히 분리돼 있다』며 『이제 우리대학도 대학행정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살리기 위해 강의·연구·행정 교수로의 업무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이재창 기획처장(통계학)은 『전문보직교수를 양성하려면 대학행정가로서 대학발전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풍토조성과 능력을 인정받을 경우 다른 대학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대학간 개방과 교류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국민대 최종욱교수(철학)는 『대학현실상 행정직과 함께 명예직의 성격이 강한 총·학장 등 일부 보직을 제외하면 굳이 교수 출신 전문행정가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며 『외국처럼 전문인력을 기용,비대해진 대학행정을 합리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대 이영수교수(교육학)는 최근 한 논문에서 『교수협의회의 역할을 강화,교수사회와 대학발전을 위한 전문적인 의견을 수렴,학사업무뿐 아니라 행정업무의 의사결정에 자치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일반 직원들 요구 무엇인가/“교수들 보직독점에 승진기회 상실”/행정분야 처·실장직 할애 강력촉구
대학교직원들의 처·실장 등 본부보직 참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균관대 교직원 노조는 지난 3월 단체협약에서 총무처장,사무처장,기획실장 등 일반 행정업무를 맡는 행정전문보직에 해당자격을 갖춘 직원은 임용해 줄 것을 학교당국에 요구했다. 연세대에서도 지난 4월 노조파업 당시 노조원들이 『교수들의 보직 독점으로 행정직원들은 승진기회를 잃어 근무의욕 저하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일부 보직을 교직원에게 개방해줄 것을 요구,박영식 당시 총장으로부터 총무처장의 교직원 임명약속을 받아냈었다.
교직원들의 요구명분은 행정업무의 전문성 강화와 일관성유지. 처·실장이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분야의 교수로 임용되기 때문에 업무의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하는 경우 업무의 맥이 끊긴다는 것이다.
또 행정직원은 생활의 유일한 수단으로 업무를 수행하므로 교수보다 책임성이 높다는 점,학교에 평생 근무하는 행정직원에 대해 승진차원에서의 기회보장은 당연하다는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대부분의 대학이 정관에 「순수 행정관련업무 부서의 장은 행정직원으로 임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도 교직원을 전문행정가로 인정하기는 커녕 교수의 하수인쯤으로 무시한다는 불만도 작용하고 있다.
현재 행정직원에게 1∼3개의 보직을 주고 있는 대학은 건국대,경희대 등 일부대학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대학은 행정직원들의 승진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부처장제,차장제를 도입했으나 실질적 권한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유승우·김철훈·고태성·남대희·이성철·이태희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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