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쿠데타설… 개혁도 “공약”/크렘린 동향 1년전과 흡사/인기도 80%서 30%로 하락/「독재」경고 등 국민도 생활고 아우성소련연방 붕괴와 공산주의 몰락,신국제질서 태동의 기폭제가 됐던 쿠데타가 오는 19일로 만 1주년을 맞는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그리고 탈이데올로기를 내걸고 대변신을 모색하고 있는 독립국가연합(CIS)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일보는 쿠데타 발발 1주년을 맞아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CIS의 오늘과 내일을 3회에 걸쳐 점검해본다.(편집자주)
크렘린궁으로 통하는 트로이츠카야 바로타(삼위일체의 문)를 지나 30m쯤 올라가면 왼쪽으로 초록색의 둥근지붕 건물이 나타난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집무실이 들어있는 크렘린중의 크렘린이다.
대외적으로는 연방 내각관으로 알려진 이곳에 사무실을 두거나 드나드는 인물에 따라 옐친 대통령체제의 성향과 권력향배,정국운영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현재 연방 내각관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주요인사들은 대통령외에 페트로프 대통령 부장관 등 일부 보좌관,스코코프 안전보장회의 의장,바실리예프 경제담당 고문,가이다르 총리대행 등 정부 각료 등이다. 최근에는 슈메이코 부총리가 들어가고 샤흐라이 대통령고문이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일부 서방관측들은 두 사람의 자리바꿈을 옐친 체제의 말기적 증상으로 보고 있다. 개혁의 기치를 내세워 크렘린을 장악한 옐친 체제가 슈메이코 부총리 등 보수세력의 크렘린 진입을 허용한 것은 그 체제가 벼랑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증좌라는 것이다.
샤흐라이 고문은 가이다르 총리대행,부르블리스 국무장관과 함께 「개혁 3총사」로 불려온 인물이다. 그는 지난 5월 범보수세력이 옐친 체제 축출을 기도하고 있다면서 강력을 대책을 촉구하고 사의를 표명했다.
슈메이코 부총리는 지난 6월의 인민대표대회를 계기로 군산복합체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같은 계열인 히쟈 부총리,체르노미르딘 부총리와 함께 가이다르 내각에 영입됐다.
이같은 옐친 진영의 재편속에 러시아는 또다시 고개를 든 쿠데타설에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 전역에 그럴싸한 쿠데타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는가 하면 옐친 대통령이 고위 공직자 전원에게 비상대기령을 내리는 등 CIS 전체가 쿠데타 발발 1주년을 앞두고 크렘린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동안 막연한 가능성으로 회자되던 쿠데타설은 지난 7월초 코지레프 외무장관의 독재회귀 경고가 나오면서 구체적인 시나리오로 발전됐다. 코지레프 장관의 발언은 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의 쿠데타 경고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옐친 대통령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인물들의 역할이 지난 쿠데타의 주역들과 동일한데다 정국흐름마저 1년전과 흡사하다.
1년전 쿠데타의 주역으로 8인 비상위원회 얼굴마담격이었던 야나예프 부통령역으로 루츠코이 부통령이 거론된다. 루츠코이는 그동안 옐친 경제팀의 급진개혁 정책이 국민의 생활을 도탄에 빠뜨리고 국가 경제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경제 비상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쿠데타 직전 야나예프가 일부 경제각료들과 함께 시장경제 정책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비상조치의 강구를 주장했던 것은 아주 흡사하다.
쿠데타 배후세력으로 지목돼 수인생활을 하고 있는 루키아노프 전 최고회의 의장의 역할로는 하스블라토프 최고회의 의장이 거명된다. 두사람의 출세배경과 역할은 닮은 꼴이다.
루키아노프는 고르바초프,하스블라토프는 옐친으로부터 실질적인 낙점을 받아 최고회의 의장직에 선출됐다. 그러나 이들은 각기 고르바초프의 신 연방조약을,또 옐친의 비상대권 확보를 앞장서서 반대하는 견제세력의 주동자로 변신했다.
쿠데타 결행의 전위대격인 국방장관직은 야조프 전 장관과 마찬가지로 강경 보수성향의 그라초프 장관이 맡고 있다.
더욱 공교로운 것은 옐친 대통령이 현재 흑해연안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고르바초프가 크렘린을 떠나 크림반도에서 휴가를 보내던중 쿠데타를 당한 시점과 장소가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다.
시기적으로도 민감한 때에 와 있다. 옐친 대통령이 지난 1월 가격자유화 정책을 실천에 옮기면서 생활수준 향상을 약속한 시한이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옐친 대통령은 당시 국민들에게 급진개혁 정책 시행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을 8∼9개월 정도 견디면 개혁정책의 결실을 국민들의 손에 쥐어주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공약으로 돌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러시아 국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인플레와 범죄,집단실업 사태 등으로 옐친 대통령에 대해 실망하고 있다. 옐친 행정부의 개혁정책은 빈부격차만 넓혀 놓았을 뿐 실질적인 부는 하나도 증가시키기 못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쿠데타 분쇄의 영웅으로 한때 80%까지 올라갔던 옐친의 지지도는 30% 안팎으로 내려 앉았다. 침체위기 징후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옐친 대통령과 러시아 보안당국은 쿠데타 발발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출범한지 1년밖에 안된 옐친 체제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위기설과 함께 옐친 체제 평가의 시기는 급격히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이진희기자>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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