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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2.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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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4월11일 독일 영내를 진격하던 미·영군은 라인강의 레마겐철교를 지나 계속 전진하다가 벨젠 집단수용소를 보고 깜짝 놀랐다. 유태인을 말살하던 나치의 수용소 참상이 처음으로 연합군에 목격된 것이다. 노천에 1만여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4만명이 뼈가 앙상한채 아사직전에 있었다. ◆수용소 앞을 지나다가 참혹한 광경에 구토를 느낀 한 영군 병사는 대오를 벗어나고 상사는 행군을 계속하라고 소리지르고… 또다른 병사는 격분하여 늙은 독일군 포로의 계급장을 떼고 멱살을 잡아 흔들고… 그로부터 나치의 인종말살행위는 하나하나 세계에 알려졌다. 히틀러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히믈러는 「유태인을 잡는 일은 벌레를 잡는 일과 같은 청소작업일 뿐」이라며 수용소 학살을 지휘했었다. ◆나치의 종말과 더불어 특정인종 말살행위도 끝났다고 세계는 생각해왔다. 그러나 친 유고연방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공화국에선 지금 회교도 및 크로아티아계 종족에 대한 집단처형,강제수용,대량 추방 등 이른바 「이민족 청소」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잔혹행위는 지난 4월말부터 시작됐다는데 억울하게 죽고 굶주리고 쫓겨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그 참상이 어떠한지 아직 세세히 알려지진 않고 있다. ◆부분적으로 흘러나오는 이야기로는 세르비아 민병대가 수감자 1백명을 이송하다가 도중에 무슨 이유인지 30명을 끌어내 사살했다든가 회교도 소녀들을 묶어 놓고 며칠 강간한뒤 휘발유를 뿌려 태워 죽였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집을 빼앗기고 강제 추방된 인원이 1백만명이 넘는다니까 그 참상은 우리 상상의 한계를 넘는 것 같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7일 「나치의 대학살 역사가 되풀이돼선 안된다」고 말했고 유엔 안보리는 13일 무력사용을 결의했지만 막상 각국은 군사개입을 꺼리고 있다. 「잘못된 지역의 잘못된 국적」이란 개탄만 도처에서 나올 뿐이다. 내로라하는 열강들이 이처럼 무력함을 드러낸 일도 처음이다. 인류 양식은 한번 더 심판대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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