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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문학/김성우(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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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문학/김성우(문화칼럼)

입력
1992.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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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8·15가 돌아온다. 8·15는 무엇하러 자꾸 돌아오는가.8·15를 맞을때마다 우리는 일본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8·15를 기념하는 것은 해방된 감격을 언제까지나 누리자는 뜻이 아니다. 다시는 8·15같은 그런 날이 없기 위해서다.

왜 8·15가 있었는가. 미국이 일본을 항복시켜 주었기 때문에 8·15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36년전에 우리 강토가 일본에 강점당했기 때문에 8·15가 있었다. 우리는 해방의 환희와 당위성만 생각하지 속박의 내력과 자괴에 대해서는 눈감으려 한다.

왜 우리는 나라를 잃었던가. 국력이 무력했기 때문이다. 다시 나라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째야 하는가. 강국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8·15가 가르치는 교훈이다.

문화계에서는 광복이 된지 47년이 지난 지금도 친일문학의 논란이 심심하면 고개를 든다. 친일문학이 언제까지 시비거리가 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일본 문화를 언제 우리가 전면개방할 거서이냐 하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우리문화계의 아킬레스건이다.

친일문학은 우리 문학사에 한 오점으로 마땅히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있었던 것을 묻어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친일문학 행위를 이유로 그 작가의 다른 문학적 업적을 다 엄폐해버리거나 과소평가하는 것도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문학사는 정직해야 하고 이성적이라야 한다. 작가에 따라서는 친일이전,또는 해방이후의 작품활동을 통해 그의 죄과를 보상받을 만큼의 문학사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 금자탑을 세운 사람들이 있다. 친일문학 작품집을 펼쳐놓고 보면 해방전후에 활약한 웬만한 작가는 다들어있다. 이들의 이름을 다 지워버리기로 하면 우리문학사는 공동이 된다.

우리가 아직도 광복전의 친일을 따져야 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일제에 협력해다가 연전에 자기반성을 한 어느 대학교수는 친일이 여전히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일본이 우리나라의 강점에 대해 조금도 회개하지 않고 오만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참으로 일본은 오만하다. 천황이 사과한다는 것이 모호한 어구를 입안에서 뱅뱅 굴리기만 했다. 요즘 제기되고 있는 정신대 문제만해도 솔직한 반성이 없다.

왜 오만한가.

일본이 폐허에서 일어서는동안 우리는 싸우기만 했다. 저들이 일치단결하는 동안 우리는 분열만 했다. 해방후 좌우가 대립했고 6·25의 동족상잔이 있었고 휴전후로는 줄곧 독재와의 투쟁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지역감정이다. 그동안 너와 나는 노상 으르렁거렸다. 이웃과 이웃은 남남이었다. 친일파나 월북자는 대역의 죄인이었다.

이에 비해 일본 국민들은 나라를 폐허화시킨 군국주의자들을 절대로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숭앙한다. 그런 합의와 합심이 저들을 강국으로 만들었다. 우리가 일제를 청산하느라 분파의 게임을 하고 있는동안 일본은 제국주의의 죄악을 땅에 암장하는 공동작업에 합력해왔다. 그 결과 무뢰해졌다.

우리나라에서 친일파가 없어지는 날은 일본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그날이다. 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자면 일본을 이겨야 한다. 분열이 있는한 절대도 일본을 따라잡지 못한다. 과거의 친일을 손가락질만 하고 있는 동안은 극일할 수 없다. 친일을 단죄하여 일본의 세력권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 결국은 일본에 어떤 형태로든 종속당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기 쉽다.

일제를 잊지 않기 위해서는 친일문학의 책을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일본과 맞서기 위해서는 그 책장을 덮을 줄도 알아야 한다. 민족정기를 일깨운다는 것이 자기소모의 기력 낭비가 될수도 있다.

친일문학은 오랜 옥고를 치렀다. 언제까지 사면없는 무기수라야 할 것인가. 친일문학에 대한 문죄는 재발방지를 위한 경종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끄러운 역사의 반목을 다시는 않기 위해 오늘 우리는 아픈 과거에 매달려 있을 겨를이 없다.

적어도 문학사에 관한한,친일의 상처만 만지고 이는 동안은 우리는 여전히 일제의 영향하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해방되어야 한다. 일제의 유령으로부터 이제 해방되어야 한다. 반세기가 가깝도록 친일파를 미이라로 만듦으로써 가장 반사이익을 얻는 것은 바로 일본이다. 그들은 아직도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다고 쾌재를 부를 것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점령하면서 맨먼저 문화말살정책을 폈다. 문화를 죽이는 것이 민족을 죽이는 첩경이다. 지금 우리가 친일문학자라 하여 그 작가의 문학을 다 지워버린다면 그것은 우리 문학사의 말소작업이 되는 것이고 결국은 우리 문화를 말살시키는 일이 된다. 일제가 노렸던 정책에 동조해주는 결과가 된다.

우리가 민주화를 노래삼아 부르짖어 온 것은 자체분열의 종식을 위해서다. 민주주의는 화합과 협력의 정치이념이다. 이 민주화의 시대에 우리는 어서 합일하여 일본을 이겨낼 강국이 되어야 하고 그러자면 친일문학의 악몽에서 어서 깨어나야 한다.<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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