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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기자 안익태선생 유가방문 미망인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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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기자 안익태선생 유가방문 미망인과 인터뷰

입력
1992.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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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세없어 쫓겨났을때 가장 슬퍼”/피아노 매각 유혹 끝내 뿌리쳐/안 선생이 조국 부르며 숨진 침대 그대로/작년 12월 홀로 재입주… 유품정리 소일『안녕하세요』

스페인 마요르카시 호세코스타 페레르4 고 안익태선생 유가의 현관문을 두드리는 순간 미망인 롤리타 안 여사(73)는 또렷한 한국말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짙은 분홍색 꽃무늬가 박힌 원피스 차림인 롤리타 안 여사의 표정은 무척 밝아보였으나 집안은 어딘가 어둡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안익태선생의 유가는 바르셀로나에서 비행기편으로 1시간 거리인 지중해상 휴양지인 마요르카섬 국제공항에서 택시로 30분가량 걸리는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다.

작은 언덕위에 자리잡은 유가의 현관은 지중해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며 하얀 페인트칠을 한 몸체는 온몸으로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을 반사하고 있었다.

바깥 풍광과 달리 어둡고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현관밖에 내리쬐는 밝은 햇빛과의 대비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었다.

대지 3백15㎡·건평 2백19㎡의 전통적인 스페인식 2층 건물은 안익태선생이 생전에 쓰던 유물과 함께 미망인이 혼자 외롭게 지키고 있었다.

1층 응접실의 벽에는 큰 딸의 두번째 남편인 화가 이루에스테씨가 그렸다는 작곡에 몰두하고 있는 안익태선생의 생전모습이 대형 유화로 생생하게 살아 이 집의 주인임을 말해주고 있다.

미망인은 대형유화 밑에 앉아 옛일을 회상하거나 남편의 유물을 정리하면서 하루를 보내곤 한다.

얼마전까지 큰 딸과 첫번째 미국인 남편 사이에서 낳은 맏손자가 함께 살았으나 손자가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유학가는 바람에 롤리타 안 여사의 삶은 더욱 외로워졌다.

「잠깐만」을 「깜잔만」으로 발음하기도 했지만 「감사합니다」 「조금」 등 간단한 한국어를 사용하는 롤리타 여사는 기자와 4시간여에 걸친 인터뷰 도중 때로는 외로움과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흐느끼다가도 곧 미소를 되찾으며 의연한 표정을 애써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롤리타 여사는 남편의 사후에도 계속 이곳 유가에서 살아오다 집세를 낼 능력이 없어 3년전 인근의 방2칸짜리 집으로 쫓겨난 시절이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서글펐다고 회고했다.

불편한 샐활보다도 안익태선생이 생전에 자신의 분신처럼 아꼈던 피아노 등을 곁에 둘 공간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가에서 쫓겨날 당시 예술을 아끼는 이곳 호사가들중 몇몇이 피아노를 팔라고 집요하게 유혹했으나 끝내 물리치고 마요르카시 오디토리오(음악당)에 피아노를 보관시켰다.

롤리타 여사는 스페인 교포사업가 권영호씨(52)가 매입,지난해 12월 말끔히 수리를 마친 이 집에 다시 입주,유품을 재정리하고 있다.

피아노는 이곳 휴가철이 끝나는 9월초에 찾아와 유가에 진열해놓을 예정이다. 유가에는 현재 고인의 체취가 묻어있는 유품들이 곳곳의 본래 위치에 보존돼 있다.

특히 2층 침실에는 선생이 자신의 조국을 마지막으로 부르며 숨졌던 침대가 하얀 시트에 감싸인채 놓여져 있으며 안락의자와 마지막 연주회때 입었던 연주복을 걸어놓은 장롱 등이 갖추어져 있다.

침실 입구에는 국내외 여행때 들고다녔던 가죽가방이 손잡이가 떨어지고 가죽이 벗겨지는 등 심하게 낡긴 했지만 정성스레 손질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고있다.

이외에도 롤리타 여사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처음 발급받았던 변영태 외무부장관 시절의 구 여권과 82년 발행된 주민등록증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주민등록증을 내가 소유하고 있는한 영원한 한국인이 아닌가요』라고 묻는 롤리타 안 여사의 표정은 남편과 남편의 조국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은가를 말해주었다.<마요르카(스페인)=김인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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