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나는 일황영조선수는 아무래도 「굉장한 일」을 해냈다. 같은 시간에 같은 감동의 회오리로 나라 전체를 한데 묶었다. 국민 누구라도 기분이 한껏 좋다. 신바람이다.
악착같은 일본선수와 벌인 피말리는 접전은 올림픽 마라톤 레이스 역사상 명승부로 남을 것이다. 40㎞ 지점을 지나면서 황 선수가 처음으로 치고 나갔을 때 우승은 이미 결정됐다. 돋보인 것은 황 선수의 뛰어난 근성과 필사적인 집념,그리고 「작전」이었다.
정봉수감독은 이날의 「작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온 사람이라고 한다. 사생활을 팽개친 열심과 정열은 말할 나위도 없다. 평가할 것은 그의 훈련방법의 독창성이다.
코스의 사전답사를 통한 완벽한 작전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레이스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정 감독의 훈련방법은 선수의 개인적 특성에 맞춘 것이었다고 한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스스로 고안해낸 식이요법이다. 경기를 앞두고 며칠은 생수와 살코기만 먹도록 하는가 하면 임박해서는 생식과 찰쌀밥으로 에너지원을 삼았다고 한다. 한국적 경험 전략이었던 셈이다.
무엇보다도 한주에 3백50㎞씩 달리게 한 스파르타식 지옥훈련과,그같은 강훈을 두말없이 따르게 만든 감독의 감화력이 놀랍다. 그 감화력은 아마도 생명이라도 내건듯한 희생정신에서 나왔을 것이다.
정 감독의 올림픽 제패전략은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서울대 이면우교수의 「W이론」과 맥이 닿는다. 「W이론을 만들자」라는 저서는 「한국형 기술,한국형 산업문화 발전전략」을 부제로 달고 있다.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고자 한다면 선진국에서 생긴 이론으로가 아니라 우리나라 현실에 바탕을 둔 「우리식 경영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W이론의 골자다. 정봉수감독의 「우리식」 훈련방법과 올림픽 제패는 이를테면 스포츠에서 거둔 W이론의 승리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 교수는 W이론 설명을 위해 자주 스포츠이야기를 한다. 「서울올림픽의 교훈」이란 항목도 따로 있다. 사고의 혁신과 발상전환을 위한 방법으로 프로야구단 운영체제를 원용하기도 한다.
서울올림픽이 성공을 거둔 까닭은 첫째 지도자의 생명을 건 몰입,둘째 우리 현실에 바탕한 전략,셋째 선수들의 필사적 집념이었다고 요약된다. 그리고 이들 성공비결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실체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적 특성이라고 할 신바람이다. W이론의 요체가 바로 신바람이다.
○총체적 붕괴위기
황 선수의 올림픽 제패는 그 자체로 신바람이기도 하지만,더 좋은 일의 조짐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 주변에는 신바람 낼 일이 너무나 없어 왔다. 눈곱만한 희망도 주지 못해온 정치가 신바람을 앗아간 주범이다. 세계는 하루 자고나면 다르게 뒤바뀌는 새 국제질서의 형성기인데,우리 정치인들은 경륜도 철학도 없이 지리멸렬한 대권 잠꼬대로 날을 지새왔다. 국회없는 나라 꼴이 된게 벌써 얼마인가.
사회에는 총체적 붕괴의 위기감이 팽배하다. 다리처럼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사회의 규범이 무너지며 사람 사이의 신뢰가 무너져 내린다.
무엇 하나 올바로 선 것을 보기 힘들다. 특히 지도자다운 지도자정신이 실종됐다. 지도자정신은 자기 희생과 솔선수범의 정신인데,그 어떤 지도자도 자신을 내던지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나라,이런 사회에 어떤 국민이 무슨 신바람이 나서 열심히 일할 생각을 하겠는가.
○지도자의 「살신」
모처럼 황 선수가 불러다 준 신바람을 또 한번 쪽박깨는 지도자가 더 좋은 일의 조짐일 수 있겠다는 예감은 여론에 몰린 두 김씨가 다시 만나기로 했다는 소식 때문만은 아니다.
「W이론」의 마지막 챕터가 우리 국민에게 신바람을 불러 일으켜 줄 「지도자 대망론」인데 유의하기 때문이다. 걸출한 지도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희생을 할줄 알고 희망을 제시할줄 알며,그로써 국민에게 자부심을 고양할 수 있는 지도자야말로 오늘 같은 변혁의 시대에 알맞은 걸출한 지도자라는 것이 W이론의 결어이다.
국민은 지금 지도자의 살신성인을 보고 싶어한다. 당리당략이 아닌 순수한 희생정신이 발휘되어야 한다. 「무수한 정봉수」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본사 주필>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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