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조가 자랑스럽다.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마지막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번 대회를 취재하는 전세계 5천여명의 기자들은 한국이 대회 첫 금메달을 사격의 여갑순이 따낸데 이어 마지막 금메달까지 거뒀다며 그저 「first and last gold」를 대회 마지막 화제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황영조의 금메달은 단순히 대회 마지막 골드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마라톤에서 승리했다. 42.195㎞에서 인간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이기에 대회 최종일 마지막 금메달이 수여되는 영광이 있다. 그는 건국이래 처음으로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에 태극기를 올렸다. 메인스타디움은 모든 스포츠의 기본인 육상과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축구의 결승전,귀족 스포츠인 승마의 장애물 비월,그리고 개폐회식 정도가 열린다. 가장 많은 관중과 가장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곳이다. 서울 올림픽서도 우리가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메인스타디움에서 외국인 선수들만의 잔치만 벌어지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황영조는 사상 처음으로 애국가가 연주되도록 했다. 그는 한국의 12번째 금메달을 획득했다. 전날까지 11개의 금메달을 획득,당초의 목표(금 12)에 1개가 부족하여 허전스러워했던 온 국민에게 뿌듯한 포만감을 안겨 주었다. 더욱이 그는 일본의 모리시타를 제치고 우승했다. 레이스 중반이후 모리시타와 단둘이서 경쟁을 벌일 때 온 국민은 모두가 손기정을 생각했을 것이다. 정확히 56년전의 오늘인 1936년 8월9일 손기정은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 교외를 역주하며 마라톤의 금메달을 획득했었다. 그렇기에 황영조의 레이스는 가슴을 더욱 죌 수 밖에 없었다. 황의 상대가 케냐의 이브라힘이나 독일의 프라이강이었다면 이 보다는 덜 초조했을 것이다.그러나 그는 몬주익의 가파른 언덕을 숨가쁘게 오르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고 마지막 2㎞를 남기고 모리시타를 따돌렸다. 곧이어 메인스타디움에 홀로 당당히 입장했으며 1백50여m 뒤에 고통스럽게 쫓아오는 모리시타를 돌아보고 승리를 확인하며 자랑스럽게 결승테이프를 끊었다. 바로 전날 80세의 노구를 이끌고 한국마라톤의 우승을 보는 것이 생애 마지막 소원이라며 바르셀로나에 온 손기정옹은 이 장면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아마도 지난 56년간 자신의 앞가슴에 멍에처럼 새겨져있던 일장기가 지워지지 않았을까. 황영조는 손옹의 응어리진 가슴,36년간의 일제치하를 잊지 못하고 항상 부담스러워 했던 한민족의 답답한 가슴을 풀어 주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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