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이끼가 남아있다면 돌멩이 하나라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문화국민의 자랑이자 도리이다. 문화예술의 창조는 그것을 아끼고 지켜가는 애정이 따라야 한다. 버려두면 망각과 폐허에 묻히고 갈고 닦으면 오래두고 빛나는 것이다. 문화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창조의 샘은 고갈된다.우리의 애국가는 수난의 시대에 만들어진 문화와 역사의 작품이자 귀중한 유산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부를 우리의 노래이기도 하다. 애국가를 부르고 들으며 우리는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지켜보며 선수들과 더불어 많은 국민은 진한 감동에 웃고 울었다.
스페인 하늘에 태극기가 오르며 금메달의 환호에 잠겼을 때,애국가의 선율에 목메인 할머니가 있다. 스페인 남부의 한적한 섬에서 쓸쓸한 불우한 만년을 보내고 있는 고 안익태선생의 미망인이다. 애국가를 작곡한 한국인 아내로서,롤리타 안여사는 여생을 긍지와 감사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스페인 여성이면서도 한국인의 아내인 그의 여생은 아름다운 추억과 불우한 만년이 엇갈리고 있다는 것이다. 작고한 남편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연금을 거부당하고 고인의 삶의 숨결의 담기고 유품이 남아있는 가옥이 우리 정부의 지원을 못받아 기념관 구실도 못하는 딱한 실정에 놓였다.
우리 정부가 이런 사정을 알면서 지원을 못하는 이유와 사연이 있을줄 안다. 그러나 너무 형식에만 얽매일 일이 아니다. 액수의 과다도 문제가 안된다. 정작 부끄러운 것은 성의가 모자란다고 의심받는 것이다. 애국가를 작곡한 선구적 예술인에 대한 외경이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색이 아니라 무관심이 딱하다.
이 경우만이 아니고 우리는 문화예술에 대해 홀대하는 경향이 있음은 자괴하지 않을 수 없다. 옛 것은 복원하면서 최근의 유산에 관한한,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으로 넘겨버리고 있다. 예술인의 생가와 흔적은 개발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기념비는 커녕 표적하나 세우려는 뜻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문화예술은 유형 무형의 자산으로 길이 보존되어야 한다. 이것이 전통이고 문화국민의 영예이기 때문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의 환희도 좋다. 애국가와 태극기의 감동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렇다고 엘리트 스포츠에 쏠린 과잉투자와 관심은 문화예술과의 균형을 위해서라도 재고가 있어야 한다.
안익태 거리라는 이름이 있는 마요르카섬에서 미망인을 불우하게 지내게 하고 기념관 자리가 쪼들리게 만든 우리네 망각은 문화예술에 대한 불경을 깨우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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