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1월 8일 상오 남산외교구락부. 김영삼 신민당총무가 기자들 앞에섰다.『3선개헌안의 날치기 통과로 국민이 허탈감과 패배의식에 빠져있는 이나라에 새로운 용기와 활력을 불어넣고 박 정권의 위장민주주의에 도전하여 이땅에 진정한 새로운 민주정치를 펼치기위해 대통령후보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이른바 40대 기수론을 제창하는 폭탄선언이었다.
일찍부터 김영삼씨의 라이벌로 일컬어져온 김대중의원 역시 얼마뒤인 70년 1월24일 뉴서울호텔에서 출마의지를 밝혔다.
『국민속에 분연히 뛰어들어 절망에 빠져있는 대중의 가슴속에 새로운 용기와 희망에 불을 지르겠습니다.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지 못하면 이나라의 민주주의는 위태롭게 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바로세우기 위해 출마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이철승의원을 포함한 40대 기수들의 도전은 8·15이래 철저한 년공서열과 관록을 내세우는 60∼70대의 원로·장로정치인들이 거암처럼 야당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단순히 보수야당내부의 문제가 아니었다. 박 정권의 전횡과 3선개헌횡포에 염증과 분노를 느끼던 국민에게는 놀랍고 신선한 「한낮의 벼락」 이나 다름없었다.
40대 기수들이 경쟁적으로 제기한 당과 장래 국가경영에 대한 갖가지 개혁처방 등은 여야의 기득권층의 반발과는 달리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대다수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눈뜨게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또 국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그후 20여년간 두 김씨가 독재정권의 탄압을 이겨가며 모진 시련속에서도 줄기차게 개혁을 시도하고 정치의 맥을 이끌어온 것은 알려진 대로다.
원래 정치는 개혁과 변화가 생명이다. 부단한 개혁과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정치는 죽은 정치나 마찬가지다. 적절한 개혁과 쇄신운동으로 성공한 케이스로는 60년대초 이른바 무기력한 미국사회에 「뉴프런티어(신개척)정신」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과감한 실천으로 국민들을 열광케하고 하나로 만들었던 고케네디 대통령에게서 찾을수 있다.
그뿐인가. 오늘날 우리는 민주당의 빌 클린턴후보가 「미국을 변화시키자」는 외침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부시진영을 만만치않게 뒤흔들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고있지 않은가.
아무려나,40대 기수론을 선언한지 23∼24년이 지난 오늘 60대가된 두 김씨는 제1,2당의 대표이자 일전을 앞둔 대통령후보로서 국민의 박수나 기대는 커녕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만신창이가 되고 사막처럼 황량해진 국회 1정국의 양쪽끝에 서있다. 이들이 그토록 신선한 주장과 외침으로 국민을 흥분케했던 「개혁의 정치」「희망의 정치」는 어디로 갔는가.
지난 6일의 3당 대표회담의 결렬은 그래도 정국수습에 한가닥 기대를 걸었던 국민에게 또한번 상처와 실망만을 안겨주었다.
오늘의 국회와 정치가 이지경이 된것은 정부가 법규정대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고 비록 난제이긴 하나 정치를 책임진 당대표들의 회담서 이를 타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날 김영삼대표가 다음날 예정된 김대중대표와의 요담을 거부한것은 성급한 처사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총선후 단체장선거의 연내실시라는 강경당론을 고수해온 김대중대표가 정주영대표와 함께 광역선거만이라도 하자고 한것은 양보인만큼 설사 다음날 거부하는 한이 있더라도 『검토하겠다』고 했어야 했다.
물론 김영삼대표로서는 두 야당대표의 합동공격에 심기가 몹시 언짢았을 것은 이해한다.
「한국의 정치」는 바야흐로 침몰직전에 놓여 있다. 여야가 이런식의 초강경대치로 일관할 경우 국회와 정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것이고 대통령선거는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여기서 필자는 두 김씨에게 또한번 간곡히 권하고자 한다. 현재 변화와 개혁,쇄신을 가장 선호하는 20∼30대 유권자가 전체유권자의 58%선임을 잊지말라는 것이다. 이제 두 김씨는 20여년전의 순수했던 개혁과 변화의 의지로 충만했던 40대 기수 시절의 정신으로 돌아가야한다. 그래서 조건없이 머리를 맞대고 정치와 국회가 침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두 김씨가 모든 책임을 상대방에게 밀면서 국민에게 끝내 희망을 주지않을 경우 다음은 국민이 외면할 것임을 잊지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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