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회담 부속합의서 채택에도 암영/북측 「교류 쟁점화」로 핵문제 희석 노린듯8월 이산가족 고향방문사업이 사실상 무산됨으로써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미리 점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이같은 실망스런 결과는 남북 양측 모두의 온건파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해 양측의 대북,대남 정책에 각각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소지도 있다.
특히 김달현 북한 정무원 부총리의 서울방문으로 호재를 맞은듯했던 남북의 경제협력 분야에는 이번 사태가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산가족 고향방문사업이 북한측의 무성의한 자세로 어렵게 됨으로써 우리측이 구상해온 남북관계의 구도가 상당부분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먼저 현재 빚어지고 있는 각종 남북대화의 답보상태가 상당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고위급회담 3개 분과위의 부속합의서 채택협상이 대표적 예이다. 남북 양측은 지난 7차 서울 고위급회담에서 이들 부속합의서를 8차 회담전에 모두 타결짓자고 약속했었다. 북측은 그러나 보안법 철폐,조·미 평화협정 체결,군사적 대결상태 해소 등 해묵은 정치논리를 앞세워 협상의 진전을 어렵게 하고 있다.
북측이 이산가족문제 협상에서도 이같은 비타협적 자세를 견지,결국 방문사업 자체를 무산시켜 버린 점에 비춰보면 부속합의서 채택협상도 별로 낙관적이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남북간의 고질로 자리잡은 핵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북측은 이산가족방문사업의 전제조건으로 우리측의 「핵문제·합의서 이해연계 방침」 철회를 들고나와 핵문제로 고삐를 죄는 우리측에게 역공세를 취했었다. 따라서 북한이 「핵카드」의 역이용을 단시일내에 버릴 것을 기대하기란 매우 어려울듯 싶다.
이산가족 방문사업 문제는 오는 9월15일부터 평양에서 열릴 8차 고위급회담의 주요쟁점으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
협상실패의 책임소재를 둘러싼 남북 양측의 공방으로 8차 회담은 매우 경색되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우리측이 북측에 대해 취할 핵관련 공세가 자연히 이 논쟁에 묻혀버려 유야무야되는 상황을 북측이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면에 8차 회담기간 남북 당국자간의 물밑대화를 통해 이산가족 문제를 포함한 남북관계 여러 현안에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즉 『고향방문 사업의 무산은 북측이 사실상 우리측의 현 정부와는 더이상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로 해석된다』는 얘기라는 것이다. 내년에 출범할 우리측 새정부와 보다 「약효」있는 협상을 하겠다는 속셈이 엿보인다는 의견이다. 이렇게 본다면 남북관계는 내년 우리측 새정부 출범시까지는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와 함께 남북한 경협 추진은 또다시 유보상태에 놓이게 됐다.
정부는 북한측이 핵문제 거론중지 등을 내세우며 8·15 남북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사실상 무산시킨데 따른 강경대응으로 「경협유보」라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전적으로 인도적 문제로 북측 스스로가 전제조건없이 성사시키자고 주장했던 이산가족 방문사업이 무산된데 대한 대응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그동안 남북 양측이 벌여온 각종 접촉과정으로 볼때 북한 핵문제가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남북경협 유보는 진작부터 예견된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남북경협 추진은 불가능하다는 핵연계 방침 고수를 강조해 왔다.
정부는 김 북한 부총리의 서울방문시에 북측이 제의한 남북 시범사업도 이 원칙하에서 추진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남포공단 조사단 파견과 최각규부총리 방북 등을 약속했다.
그런데 북측이 핵문제 해결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고수키로 했으니 경협은 자동적으로 당분간 어렵게 되고 만 것이다.
정부는 시범사업 뿐 아니라 두만강개발계획 참여 국제금융기구(아시아 개발은행 등) 가입지원 등도 핵문제와 연계하여 추진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남북 경협과 관련,가능한 분야는 제3국을 통한 간접 교역 뿐이다.
물품 수출입은 핵문제와 관계없이 제한적인 규모내에서 계속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식량·에너지·외환부족 등으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느냐이다. 북한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김일성도 어록을 통해 노동자들이 1년 가까이 배급을 기다리고 있고 평양에서 조차 식량부족 현상이 있다고 밝히고 있을 정도이다.
지난달 남한에온 김 부총리도 우리측 당국자와 기업인들에게 조속한 경협추진을 간절히 요구했다. 전경련 회장 등 재계 대표들이 대북 민간경협 사절단의 방북계획을 내놓은 것도 김 부총리의 간청에 대한 화답의 성격이 강했다.
남북 경협추진의 키는 사실상 북한이 쥐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핵문제 해결은 순전히 북한이 몫이기 때문이다.<이백만·신효섭기자>이백만·신효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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