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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 망신 낳는 병든 사회(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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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 망신 낳는 병든 사회(사설)

입력
1992.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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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무너져도…」하는 말을 흔히 듣는다. 이 말은 절망과 위기의식을 함축하면서도 극복의 의지를 나타낸다. 솟아날 여지가 있다는 낙관의 표시인 것이다. 불안감을 느끼고 불만이 늘면 말세론이 고개를 든다. 말세론은 반드시 종교와 연관되지 않아도 생길 수 있는 사회현상의 한가지다.미망과 신앙이 혼동되면 파문은 크게 달라진다. 망신 앞에선 합리성은 물론이고 정상의 종교도 설 자리를 찾지 못한다. 요즘 극히 일부의 청소년을 상대로 번지고 있는 시한부 종말론이 또 하나의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오는 10월28일에 예수가 공중에서 재림하고 이 사실을 믿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아 갑자기 실종된다는 것이다.

지하철이나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이런 절박한 「위협의 전파」를 가끔 들을 수가 있다. 귀담아 안들으면 그만이지만,「휴거」를 전하는 목소리는 절박하기만 하다. 「그날」이 가까워지면서 의외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음이 놀랍다.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며 가출소년이 늘어나고 재산까지 처분해 「종말집단」에 합류하는 병적인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종파나 소수 종교집단의 문제로 접어 두기가 어렵게 되었다. 피해가족들이 하도 답답해 사회의 대책까지 호소하고 나선 것을 보면 그 심각성은 알고도 남음이 있다. 시한부 종말론을 떠드는 「휴거」설은 지금 당장의 허망한 피해보다 「그날」이후의 예측 불가능한 파장이 한층 우려된다. 예언의 날이 조용히 넘어가면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상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대양사건의 악몽도 지워버릴 수 없지 않은가.

종말론은 기독교 사상과 신앙의 큰 뼈대의 하나이지만,이것을 그릇되게 해석하면 미신과 환각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마련이다. 기독교가 전파된 이래 구체적 종말의 날이 얼마든지 제시되었으나 그대로 이뤄진 일이 없다. 정상의 신앙은 오도된 종말론을 이단으로 취급함은 역사가 실증하고 있다.

이른바 휴거라는 종말론에 몰입한 세대가 청소년층이라는데 우리는 곤혹감을 느낀다. 비록 방황하는 세대라고 하나 이렇게까지 여리고 나약하며 무정견 한 것인가. 그동안 기성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개교회주의자와 기복신앙의 팽창에만 몰두한 어설픈 대가가 오늘의 반신앙적 현상을 잉태시킨 것은 아닌가. 상투시대의 유산인 정감록의 말세론이 이단을 접목된게 아닐까.

허망은 반드시 절망을 낳고 부른다. 이 고리를 차단하려면 미망은 신앙이 아님을 준엄하게 깨우쳐 주는 것 뿐이다. 이 일은 기성종교의 각성과 사회의 건전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신앙의 위기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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