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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2.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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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일간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종군위안부 문제를 일본에서 처음 들고나온 한 일본인이 있다. 배후에 송두회씨라는 재일한국인이 리드하고 있었지만 종군위안부 보상을 처음으로 여론에 호소한 장본인은 아오야기 아쓰코라는 이름의 일본인 주부이다. ◆아오야기씨는 89년 5월 자신이 사무국장격으로 있는 「조선과 조선인에게 공개진사를 바라는 백인위원회」라는 단체이름으로 「일본인은 조선인에게 공식 진사하라」는 광고를 아사히 저널에 내면서 이 문제의 공론화를 시도했다. 12월까지 격주로 15회에 걸쳐 낸 광고를 통해 「…중군위안부로서 전쟁터에 투입되어 말할 수 없는 희생을 시켰으면서도… 한푼의 보상도 안하고 위로의 말 한마디도 없이 40여년이 지났다」고 고발했다. ◆그녀는 89년 11월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일본측에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재판을 걸기위한 한국측 원고를 찾기위해서였다. 그러나 첫 방문에선 당장 이렇다할 호응을 얻지못했다. 90년 3월의 두번째 방문에서는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의 적극 지원으로 서울에서 일본 대사관을 향해 시위행진까지 할 수 있었다. ◆아오야기씨 다음으로는 언론인 우스키 게이코씨,변호사 타카키켄이치씨 등이 나서 이 문제를 맡았다. 우스키씨는 90년 12월 「일본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회」를 만들었고 타카키씨는 91년 8월 동경에서 「전후 보상국제포럼」을 개최했으며 한국인 35명을 원고로 희생자 보상청구소송을 동경지법에 내는 주임변호인역을 했다. ◆이 문제를 캐는데 한국의 윤정옥교수 등이 개인적으로 많은 애를 쓴것도 사실이지만 정부나 민간차원에서 모두 소극적이었던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뒤늦게나온 한국정부의 공식보고서가 일본자료를 베낀 것이라는 일본 신문의 지적은 이 문제에 접근하는 우리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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