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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을 보라」/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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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을 보라」/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2.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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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을 보라,창밖을 보라』한겨울 아이들의 즐거운 가락은 이렇게 시작이 된다. 그 뒤로 「흰 눈이 내린다」로 이어진다. 금방 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환성이 들릴것만 같다.

그러나 지금 한여름의 「창밖을 보라」가 그처럼 안한한 가락일 수는 없다. 그 철 아닌 노랫말은 우리 정치를 보는,실망 직전의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 한 나라의 정치가 이래도 되는가. 무슨 정치가 국회 하나 제때 못여는가. 나라의 명운을 책임지겠다는 사람들의 경륜이 겨우 이 뿐인가. 그들의 지금 행태가,골방에 들어앉아 몇장 그림 쪽에 정신이 팔린 승부꾼과 무엇이 다른가.

그래서 답답한 나머지에,아이들 노랫말을 떠올리는 것이다. 「창밖을 보라」,「나라 밖을 보라」­고.

그 「창밖 풍경」을 여기 다 그릴 수 없다. 그러나 근래의 신문보도만으로도 점조는 가능하다.

지금 우리 해군의 전남·경북 두 호휘함이 석달에 걸친 태평양 「원정」을 끝내고 귀항중이다. 1천5백톤급 최신예 국산함들이다. 함상의 젊은 사관들은 우리 대양함대의 꿈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한·미·일·가·호 등 5개국이 참가한 환태평양훈련(RIMPAC)을 바로 지난달 28일에 마쳤다. 훈련의 한 안목은 대잠수함전이다. 말은 않지만,대상은 러시아 잠수함 일수밖에 없다. 아직은 러시아가 동아시아의 군사적 실체임을 말해준다. 일본의 해상자위대가 최신장비를 동원,훈련의 대잠수함전을 주도한 사실은,일본이 이 지역 군사균형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등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소련은 지난 주,아세안확대외상 회의에 띠를 맞추듯 그동안 철수를 진행해온 베트남의 캄란해군기지를 유지할 뜻을 밝혔다. 베트남 정부가 이를 환영할 뿐 아니라,미국도 양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남진위협이 그런 관측의 근거다.

중국의 국방예산이 89년이래 50%나 늘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2050년까지의 장기적인 해군력 증강계획도 이미 시작됐다. 지난달에는 중국이 우크라이나로부터 항공모함을 구입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신예 전투기 등 구 소련 무기의 구입도 활발하다. 인접 국가들에게는 대단한 위협이 아닐 수가 없다.

그 위협은 구체적으로 남중국해를 몽땅 자기네 영해로 규정한 지난 2월의 중국 영해법과 이에 따른 남사(스프래틀리)군도의 영유권 분쟁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구 소련 해군의 감축으로 생긴 힘의 공백을 중국이 메우는 듯한 형세다.

이 때문에 아세안 각국은 때아닌 군비확장을 서두르고 있다. 이번 아세안 외상회의는 「남중국해선언」을 따로 채택했다. 회의에 참석한 이상옥 외무장관은,우리나라로선 처음으로,「아·태지역 차원의 안보대화」를 강조했다.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를 꺼려왔던 그 사이 안보정책기조의 변화를 예감케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에서 보면,중국의 남중국해 독점은 치명적인 해상수송로의 제약일수가 있다. 미군의 후퇴를 따른 중국의 군사력 팽창은 동아시아 군사균형이 흔들림을 뜻한다. 이에 대항하여 일본의 군비증강이 진행된다. 당연한 것처럼 경제대국 일본은 정치대국·군사대국의 길을 간다. 그 궁극에 핵대국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 그 불길함의 마지막 계기가 한반도의 불안,북한의 핵개발일 수도 있다. 일본의 PKO법도 이런 맥락에서 읽으면 뜻이 달라진다.

이런것들이 14대 국회가 문을 못열고 있는 동안에 벌어진 「창 밖 풍경」이다. 이 정도 점조만으로도 우리 처지를 깨닫고 남는다.

그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동아시아 「천하대란」의 가능성이다. 냉전체제가 지녔던 역설적인 안정의 틀이 무너진 뒤,「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지정학적인 각축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김경원 전 주미대사=한국일보 7·17). 게다가 김일성,옐친,등소평체제가 모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불확실성을 더한다.

그렇다면,우리의 처신은 어떠해야 하는가가 의당한 다음 물음이 된다. 이틈에서 살아 남을 국가전략이 과연 우리에게 있느냐는 것이다.

대단히 섭섭하지만,이 물음에 대한 당장의 대답은 매우 부정적이다. 골방에 들어앉은 꼴인 이른 바 대권주자들,이익단체를 찾아 다니며 표이삭이나 줍고 있는 사람들에게서,그런 전략적 사고를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가지 쟁점에 매달려 국회마저 공전시키는,우리정치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할수도 있다.

「창 밖 풍경」에서 또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 주변의 모든 나라가 변화를 추구하고,갈길을 이미 선택하고 있음이다. 일본·중국·러시아 할것없이,그 변화와 선택은 체제의 깊숙한 곳에까지 이르는 대전환을 뜻한다. 심지어 북한마저 「변화를 거부하기 위한 변화」를 선택한 듯이 보인다. 그렇다면 처진 것은 우리 뿐이 아닌가. 정치공백 속에 치러야할,표 이삭줍기 말고는 국가경영철학을 들을 수가 없는 14대 대선이,도대체 그런 변화와 선택의 계기 일 수가 있을까.

그래서 거듭 말하는 것이다. 「창밖을 보라」 「나라 밖을 보라」­고.

그리하여 정치를 정치답게,대선을 대선답게 하기를,신신 당부하는 것이다.<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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