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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제질서의 양면성/김영작 국민대·국제정치학(목요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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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제질서의 양면성/김영작 국민대·국제정치학(목요진단)

입력
1992.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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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국」은 사라졌지만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국제질서」가 구가된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탈냉전시대의 국제관계는 여전히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흔히들 탈냉전시대를 「적대성(국) 없는 시대」니 「파트너십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아직은 희망적 미래상일뿐 현실적으로 반의 진실성만을 나타내주는 것이어서,국제정치의 복잡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방해하고 나아가 올바른 대응책을 그르칠 위험마저 있다.

탈냉전시대가 냉전시대의 우·적 개념과 군사적·이데올로기적 대결 위주에서 벗어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소련이 더이상 서방세계의 적대국이 아닌 탈냉전의 세계를 「적대성(국) 없는 세계」라고 규정하는 것은 일면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이 경우 「적대국이 없다」는 말의 뜻은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면에 걸친 총체적 적 곧 「Enemy」가 부재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탈냉전시대가 서방선진국회담(G7)이나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 상징되듯 주요 국제현안에 대해 집단적 협력을 통해 해결을 모색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탈냉전의 세계가 경제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대립국」(Adversary)이 없는 「동반자」(Partnership)의 세계가 된것은 아니다.

○「파트너십」의 허와 실

탈냉전후 국가간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파트너십」이란 용어가 특히 애용되고 있다. 예컨대 1990년 봄 부시 미 대통령은 가이후(해부) 일본 총리와의 미일 정상회담에서 미일관계를 「글로벌 파트너십」(세계규모의 동반자 관계)이라고 규정했다. 또 이달초 뮌헨에서 열린 주요선진7개국 수뇌와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G7+1)에서 콜 독일수상은 구소련 연방 모두를 G7의 「포괄적 파트너십」 관계라고 규정했다.

한미관계 한일관계에서도 기회있을때마다 「수평적 파트너십」 형성이 강조되어 오고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도 그 구체적 내용은 현실로 나타나 있지 못하고 그 실현을 위한 방법론에 마저 이견이 상존하고 있다. 미일간 「글로벌 파트너십」의 허상은 무엇보다도 쉽사리 풀릴 것 같지 않은 경제마찰에 집약되지만 퀘일 미 부통령은 지난 5월 일본을 방문했을때 『글로벌 파트너십에 관한 일본측의 정의를 듣고 싶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일본은 일본대로 『미국의 일방적 결정을 강요하는 식의 글로벌 파트너십은 받아들일 수 없다(도변외상)』고 반발하고 있다. 또한 구주통합군 구상을 둘러싼 미국와 프랑스간의 갈등은 드디어 최근 베이커 미국무장관으로 하여금 뒤마 프랑스 외상에세 『도대체 프랑스는 미국의 우방인가 적인가』라고 까지 따져 묻게 만들었다. 한일간에는 물론 한미간에도 「수평적 동반자」라는 슬로건에 허와 실이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뿐만 아니라 주요 각국의 장기적 세계전략에도 대립이 있다. G7국가들의 대러시아 전략이 좋은 예가 된다. 즉 미국은 러시아와 핵관리 협력을 축으로 하는 특별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G7내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발휘하려 한다. 이에대해 프랑스는 러시아를 대구주에 포함시켜 미국에 대한 세력균형을 꿈꾸고 있다. 독일은 한마디로 자국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위해 일본을 대러시아 지원에 깊이 끌어넣으려 하고 있다. 일본은 경제적 공헌을 미끼로 북방영토에 대한 열강의 지원을 뮌헨 「정치선언」에 포함시켰고,핵강국화에로의 길에 면죄부를 받으려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대립성」의 현저화

오늘날 국제정치의 이같은 상황을 간결히 표현해주는 용어가 있다. 그것은 탈냉전후 「파트너십」이란 말과 함께 새롭게 자주 쓰이게 된 「대립국」 곧 「Adversary」라는 어휘다. 상반된 뜻을 지닌 두개의 용어가 함께 자주 애용된다는데에 역설적이긴 하지만 탈냉전시대 국제정치의 양면성이 잘 나타나 있다.

서구의 일부 학자나 언론에서 이 「Adversary」란 단어를 「Enemy」와 혼동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나 엄밀하게는 냉전시대의 「적」(Enemy)과는 구별되는 「대립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미국내에서의 산업스파이 활동을 강화하는 프랑스에 대해 미 FBI가 프랑스를 「비전통적 대립국」으로 분류한 경우나,미 의회가 일본을 「대립적 무역국」이라고 비난할때 모두 「Adversary」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적은 사러졌으되 「대립적 상대」가 늘어난 세계,「파트너십」 모색되나 패권과 세력균형이 갈등하고 아직도 국익우선의 원리가 가장 크게 작동하고 있는 세계,특정한 우방과도 한 분야에서의 공동이익이 다른 분야의 공동이익으로 자동 연결되지 않는 세계,이런 것들이 탈냉전시대 국제정치의 두드러진 특징들이다.

한마디로 냉전은 사라졌으되 신 질서는 정착되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우리 한국도 세계적 차원에서는 이와같은 국제환경에 처해 있으면서,한반도 차원에서는 북한에 대한 포용과 더불어 경계를 게을리 할 수 없는 「준냉전」 상황이 겹쳐있다.

외교와 국가전략을 구상함에 있어 냉전적 발상으로 안되지만 실질서에 대한 장미빛 낙관도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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