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아들·딸 선전으로 애국가 울려펴지건만/국민·정부 모두 외면… 생계 막막/연금받으려 소중한 한국 국적 포기/스페인선 「안익태거리」 등 매년 추모메달만 많이 따면 그만인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계기로 애국가의 작곡자인 고 안익태선생의 미망인 로리타 안 여사(73)에 대한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무관심이 부각되고 있다.
지난 26일 올림픽 첫 시상식에서의 애국가 연주를 들으며 국민들은 감격을 맛보았으나 금메달리스트 여갑순양(18·서울체고 3)에게 쏟아지는 갈채와는 대조적으로 로리타 안 여사는 스페인 남부 마요르카 섬에서 남편의 조국에 버림받은채 외롭고 불우한 만년을 보내고 있다.
근세이후 민족의 동질성을 지키고 조국애를 키워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해낸 애국가가 올림픽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망국의 한을 품고 독일에 유학중이던 청년 안익태는 조선사람들이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의 영탄조 선율에 가사를 붙여 국가 삼아 부르는 것을 안타까워 하다 지난 36년 베를린 올림픽을 2개월 앞두고 애국가를 완성해 냈다.
안익태는 그해 8월1일 올림픽 개막직후 일본선수로 참가한 손기정(마라톤),김용식선수(축구) 등 조선청년들을 찾아가 자신이 만든 애국가를 열정적으로 불러주고 건투를 빌었다.
이 열혈청년의 애국심에 고무된 덕분인지 손 선수는 보름뒤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안익태는 해방후인 46년 스페인 마요르카 오케스트라가 창단될때 초대 지휘자로 부임,현지에 정착한뒤 로리타양과 결혼,세딸을 두었다.
로리타 여사는 남편의 조국인 한국을 남편만큼 사랑해 65년에 남편이 59세를 일기로 작고한 뒤에도 24년동안 한국 국적을 유지,한국인임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조국」은 로리타 안 여사를 번번이 외면해왔다.
남편과 살던 셋집을 지켜온 로리타 안 여사는 집세를 내지 못해 거리로 내몰릴 지경에 이르자 할 수 없이 스페인 국적을 재취득했다. 그나마 최소한의 생활을 하기위해서는 스페인 정부의 노인연금이라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로리타 안 여사의 딱한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스페인 교민실업가 권영호씨가 90년 11월 12만달러에 이 집을 사들여 우선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조성,우리 정부에 기증할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이마저도 『기념관의 관리비를 부담할 수 없다』며 차갑게 거절해 버렸다.
88서울올림픽이 끝난뒤 거액을 들여 서울평화상을 제정했고 이번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수많은 국내 인사들이 참가하고 있으나 로리타 안 여사는 여전히 잊혀진 존재이다. 로리타 안 여사는 TV로나 시상식장의 애국가 연주를 들으며 남편을 회상하고 「조국」에 대한 서운함을 달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철저하게 안익태선생 유족을 외면하고 있는 것과 달리 마요르카 시민들은 한국에서 온 위대한 예술가를 숭모,도시 한곳을 「안익태 거리」로 이름짓고 매년 추모행사를 열고 있다.<바르셀로나=올림픽 특별취재단>바르셀로나=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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