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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통제(화요칼럼 이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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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통제(화요칼럼 이문희)

입력
1992.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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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우리 언론상황을 말해주는 씁쓸한 일화 하나. 5공초 워싱턴에서 한미 안보회의가 열렸던 어느날,미 국방부의 대변인이 한국기자들과의 자리에서 『기사를 잘못 쓰면 당신들 대변인에게 말해서 기사를 못나가게 하겠다』고 반농담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농조이긴 했으나 너무나 있을 법하지 않은 말이라 연유를 알아봤더니 우리 대표단중 한사람이 미국측 인사를 만난 자리에서 서슴없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너희들이 아무리 질문해봐야 나갈 기사는 뻔한데 하는 비아냥이었는지,아무리 군사정권이라고 하지만 보도기관의 기사를 정부에서 빼고 넣고 하겠다고 공언하는 것이 기가 막혀서인지 그 대변인의 농반진반은 끝내 그 의도가 밝혀지진 못했다. 그저 미국 언론하고 우리하고 다를게 뭐냐고 천역덕스럽게 굴려던 우리 기자들만이 민망해졌을 따름이다.

이런류의 일화는 당시 언론에 관계했던 누구나에게 있을 것이다. 「교섭 상대국에 언론통제를 약속했으니」하며 아무 주저없이 보도금지를 요구해 온 적도 있었고 외신엔 수도없이 보도된 기사를 「국내선 불가」라고 한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망라하자면 한이 없고 그럴수록 스스로 창피한 꼴만 들춰 내는 것일뿐. 이 모든 것이 「지난날」이란 것만이 위로일 뿐이다.

○국민의 이익 우선

6박7일의 북한 정무원 총리 김달현의 남한방문이 남북관계에서 무엇을 생산해 낼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나 그를 맞기 위해 당국이 또다시 「보도통제」라는 「구 시대의 수단」을 재작동시킨 것만은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닌 것 같다. 보도에 의하면 몇몇 일정을 제외하고는 기자들의 취재가 거부됐고 기사는 거의가 당국이 제공하는 자료를 참고한 것이며 더구나 이런 통제가 「북측의 심기」를 고려한 것이라니 어처구니조차 없기도 하다. 그런 수모의 인내가 무슨 황금알을 가져다 주는지는 몰라도 왜 아직도 정부가 언론기관의 보도기능을 자기 주머니의 동전쯤으로 알고 남과 이런 약속 저런 약속을 할 수 있느냐에 정말 의아해진다.

국익과 보도기능이니 알 권리니 하는 것을 여기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른바 민주화·자유언론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하는 지금 언론 스스로가 가장 크게 고심하는 것이 바로 자율을 지키면서 어떻게 이런 요소들의 상충을 최소화시키느냐에 있다는 것이 실상이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도 많았고 아직 미숙한 구석이 많지만 착실히 이런 갈등·상충을 발전적으로 해소해 나가고 있다고 자부하고 싶다.

보도와 통제의 극단적인 갈등의 예로 늘 지적되는 것이 뉴욕 타임스의 미 국방부 기밀문서 보도사건이다. 월남전이 절정인 1971년 6월13일 타임스는 미국의 월남전 개입과정에 대한 기밀자료를 입수,보도했다. 정부는 즉시 헌법상의 방첩조항을 들어 보도금지를 요청했으나 타임스는 이를 거부했다. 이 내용을 알리는 것이 「국민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거부이유였다. 「금지」와 「보도」의 공방송에서 연방 대법원은 그해 6월26일 신문측의 승소를 판결했고 중단됐던 보도는 7월1일부터 계속됐다.

이때 연방 대법원의 판결골자는 이 기밀문서가 보도됨으로써 국익에 해악을 가져온다는 증거를 정부가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는 다소 소극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판결은 보도의 통제는 그만한 타당한 조건들이 모두 갖춰지기 전에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너무도 명백히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자유언론은 기본

「북한의 실세」라는 부총리 일행이 다녀간후 발표된 것은 남포에 우리 조사단을 보낸다는 그것이 전부였다. 물밑에서 무슨 그럴듯한 얘기들이 오간지는 모르겠지만 옆에서 보기만으로는 북한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구석이 어디에도 없는 매우 실망스런 것이었다.

우리 대통령은 분명히 핵사찰문제가 해결되고 고위급회담의 부속합의서가 완결되면 남북 합작,투자사업이 전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청와대에서 점심을 대접해가며 말했는데도 그는 떠나기전 기자회견에서 「핵문제를 거론한 적은 한번도 없으며 핵이 남북경협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며 뒷발질하듯 평양으로 갔다.

그는 또 기회있을 때마다 남한의 언론에 대해 불평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불평이 이유있는 것인지,우리 언론의 잘못인지,아니면 북한식의 생떼인지를 가리기 위해서도 뒤늦게라도 이 문제는 따져져야 할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근거없는 비방도 삼가야겠지만 북한의 비위를 맞춘다고 생떼를 참아줄 필요는 더욱 없다.

지금 통일의 가장 선결 요건은 고향방문에서 경협,핵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 대북 자세가 이것을 기대하며 설정돼 있고 한치라도 변화가 있을 때 진정한 진전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끝도 없이 「당국」을 따돌리고 「옆길」을 택하려는 북을 끈질기게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바라는 통일도 우리들의 기본 가치들이 지켜지는 가운데서 있어야함이 너무나 당연하듯 어느 경우에도 민주·자유언론 등의 원칙이 교류 때문에 희생되어서는 안되며 이제 참아줄 국민들도 아니다.

다시는 보도통제의 문제가 북한을 포함해서 어떤 대외교섭에서라도 흥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차라리 필요에 의해 비밀로 하는 것은 정부의 재량일 수가 있다. 그러나 공개가 불가피하다면 그것은 이미 정부의 손을 떠난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편집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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