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투자기관에 이사장이라는 「빈터」를 마련한 것은 5공의 유산이다. 생겨날 때부터 이 직책에 대한 말썽이 따랐다. 옥상옥이다 위인설관이다 예산낭비다 하는 질책과 비난이 꼬리를 물었다. 권력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니 이쯤의 반대는 아랑곳할 바 아니었다. 고위직을 물러난 인사들이 마치 고급 휴양지에나 가듯이 이 자리를 돌아가며 차지했다.6공이 되면서 뭔가 변화가 있을 줄 알았다. 제도를 아예 없애거나 아니면 합당한 기능을 부여하고 전문인을 기용하는 방법이 강구되지 않을까 기대한 것이다. 예상은 빗나가도 크게 빗나갔다. 얼마나 허망한 기대였던가를 6공 말기에도 계속되는 인사를 보고 거듭 실감할 따름이다.
이사장제도가 창안부터 잘못되었음은 새삼 지적하고 거론하기가 쑥스럽다. 실제의 운용이 과오를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한마디로,행세를 하며 놀고 먹어도 되는 자리가 아닌가. 뚜렷한 책무도 없으면서 대우는 극상이다. 정부의 고위직에 비해 손색이 없는 판공비라는 보수와 사무실 승용차에 비서와 운전기사를 거느린다. 그럼에도 할 일은 없고,그러니 출퇴근도 일정하지가 않다. 나가도 그만 안나가도 그만이다.
이러한 자리이니까 전문성 따위는 애초에 도외시 되었다. 그동안 거쳐간 얼굴을 보면 정부 투자기관의 성격과는 아주 무관하기만 하다. 단적으로 경찰출신이 은행에 가는 경우,어떤 인연이나 관계가 있는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정부 투자기관은 이름 그대로 정부가 만든 기업이다. 사기업에서 전문 경영인을 기용하고 양성하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현실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다.
5공과 6공 정권은 이사장 제도를 인사의 편법과 선심용으로 활용했고 또 지금도 그렇게 오용하고 있다. 출마를 포기한 대가로,또는 그냥 놀리기가 미안해서 쉬어가는 자리고 맡겨주는 인상이 뚜렷하다. 「설관」은 우선 명분이 있고 득실을 엄격히 따져야 마땅하다. 필요한 일이 있어 필요한 사람을 등용함이 인사의 원칙이다. 이사장 제도의 운용과 인사는 공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을 보장해준 조선조의 악폐를 답습한게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불러 일으킨다.
지금 관공서는 냉방장치를 멈추고 삼복더위를 참아내고 있다. 지금 우리 경제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긴축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과소비를 억제하고 거품을 없애려는 정부의 의지표현이 이 만큼 대단하다면,정작 손을 대야 할 데가 어디인가는 자명하다. 작은 정부의 실현이 현실로 어렵다면 쓸데없는 혹을 잘라내는 결단이라도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곧 위인이 아닌 위민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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