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나치 불 경찰들 유대인 대량검거/불 언론 「부끄러운 과거」 집중조명/생존자 증언등 통해 죄악인정 촉구/“비시 괴뢰정권책임 미테랑은 발뺌【파리=한기봉특파원】 1942년 7월16일 새벽 3시. 나치의 프랑스점령기간중 가장 어둡고 수치스런 역사가 기록됐다.
파리 등에 거주하는 유대인 1만2천8백84명은 이시간 비시 친나치 정권하의 프랑스경찰 4천5백여명에 의해 일제히 검거됐다. 이들은 파리 15구에 있는 동계자전거 경기장 벨로드룸 디베르에 2일간에 걸쳐 모두 집결됐다.
유대인들은 수일후 프랑스 각지의 집단수용소에 분산됐다. 그리고 아우슈비츠행 기차를 탔다. 어린이 4천50명,여자 5천8백명이 포함된 이들중 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다. 이날의 작전명은 「봄바람」이었다.
프랑스 유력지들은 「벨로드롬 디베르대검거」로 불리는 이 사건의 5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당시 비시정권의 죄악을 상기시키는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르몽드와 르피가로지는 당시의 자세한 상황전개와 목격자 생존자의 증언을 발굴,게재했다. 「끔찍한 기억」 「참을 수 없는 비명」 등의 제목이 말해주듯 생존자들은 새벽의 검거장면,벨로드롬에서의 비참한 모습,부모와의 이별 등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히 증언,충격을 주었다.
유력시사주간지인 누벨오브세르바퇴르지는 프랑스 당국에 의해 운영됐던 유대인 집단수용소의 실태를 우리역사의 가장 어두운 페이지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로 고발했다. 렉스프레스지 역시 커버스토리로 비시정부 수반이었던 페렐장군을 추종하는 극우적 이데올로기의 공공연한 부활을 경고했다.
프랑스내의 유대인 체포의 시발점이 된 50년전 이날을 맞아 비인간적 죄악에 대한 상기와 함께 논란의 핵심은 프랑스 정부가 당시 비시정권의 죄익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해야하는가에 집중되고 있다.
이와관련,유대계 중심의 지식인 수백여명은 지난달 벨로드롬 50주년 위원회를 창설하고 미테랑 대통령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정부의 공식인정을 촉구했다.
이에대해 미테랑 대통령은 14일 혁명기념일 기자회견석상에서 『당시의 프랑스는 비시체제이었을뿐 공화국정부가 아니었다』며 『프랑스공화국 정부는 역사를 통해 인간의 평등을 실현해왔다』고 밝히고 프랑스정부가 비시정권하의 잘못을 인정할 이유도 책임도 없다는 입장을 확실히 했다.
그러나 50주년 위원회는 당시 유대인체포에 관여한 사람은 모두 프랑스경찰 등 행정조직이며 이는 프랑스라는 체제하에서 때로는 자발적으로 실행됐기 때문에 프랑스정부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정부가 엄숙하게 죄악을 인정하는 것만이 프랑스공화국의 이념과 나치에 저항해온 국민적 감정에 보다 충실한 길이므로 이제는 50년간의 침묵에 종지부를 찍어야할 것이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그러나 미테랑대통령은 16일 벨로드롬이 있었던 거리에서 거행된 추모식에 참석,헌화하는 것으로 대신했을 뿐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게슈타포와 비시정권의 협조로 42년 한해에만 프랑스 국적자 1만6천여명을 포함,약 4만2천여명의 유대인이 프랑스내에서 체포수용됐다. 이중 8백여명이 45년까지 살아 남았다. 나치점령기간중 총 희생자는 8만여명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아직도 프랑스사회는 대체적으로 유대인 사회에 대한 프랑스인의 범죄를 인정하려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 당시의 경찰간부 2명만이 기소됐을 뿐 관심을 끌었던 당시 리옹의 경찰책임자 폴 투비에에 대한 소송은 연초 재판부에 의해 기각됐다.
프랑스언론들은 밸로드롬 대검거 50주년을 맞아 부끄러운 과거를 집중조명하면서 국민들에게 의도적인 망각인가,죄의식의 결여인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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