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사건이면 형량도 통일돼야”/「재판관컴퓨터」 나왔다/인공지능이용 96개 유형 추론/판사·의사등 지식·경험 입력/“자유심증 해쳐” 법관들은 냉담비슷한 사건이라도 법관들마다 일정치 않은 선고형량의 차이를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유사한 사건에 대해 각 법원 또는 판사들마다 형량을 다르게 선고하는 것을 합리적으로 통일하는 일은 우리 사법부가 안고 있는 최대과제중의 하나이다.
고려대 전자계산소 소장 김성인교수(46·공학박사)를 중심으로한 공과대 산업공학과 인공지능연구실팀 4명은 교통사고 사건을 모델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업무상과실 형량결정시스템」을 개발,최근 미국의 인공지능관련 유력 학술전문지 「Expert System With Applications」에 발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 교수팀이 발표한 업무상과실 형량결정 시스템이란 인간전문가(법관·의사·경찰관·보험전문가)들이 갖고 있는 지식·경험·추론능력을 컴퓨터에 입력해 교통사고 사건에서 가해자(피고인)의 형량을 산출해 내는 방식.
형량결정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들을 세부사안별로 분류해 입력하면 컴퓨터 공학의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인공지능 기능을 가진 컴퓨터가 96가지 유형중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가를 추론해 적당한 형량을 결정해준다.
김 교수팀은 이 시스템이 판사들이 형량을 결정할때 고려하는 피의자 및 피해자 과실정도,피해정도,합의의 만족도,사고의 정황,적용법조문,기존 판례 등 모든 양형 결정인자들을 선정하고 각 인자마다 세부적인 사안을 분류해 놓았다고 밝혔다.
따라서 사용자(법관)가 구체적 사안의 데이타를 양식에 따라 입력한뒤 컴퓨터와 대화형식을 통해 의문점 등을 제기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컴퓨터가 추론기능을 발휘해 각 경우에 적절한 형량의 상·하한선을 제시하게 된다.
김 교수가 컴퓨터 활용을 통해 양형문제 해결을 처음 시도한 것은 지난 73년부터.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뒤 응용수학과에 학사편입한 김 교수는 선친인 김윤행 당시 대법원판사(90년 작고)가 양형 편차문제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컴퓨터 작업으로 교통사고 사건의 객관적인 양형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선친의 도움과 광범위한 판례수집,법관들과의 면담 등을 통해 이때 점수산정 모델을 개발했다.
33가지 형량 결정요인의 각각에 부여한 점수를 합해 이에 해당하는 형량을 결정하는 방식이 국내 법률전문 잡지에 발표되자 법조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이 방식은 요인들간의 상호작용을 고려할 수 없고 특수한 경우에는 불만족스런 형량이 제시되는 등 융통성이 없는것이 단점으로 지적돼 연구를 중단했었다.
김 교수는 80년대 초부터 인공지능의 전문분야 응용바람이 일면서 다시 양형결정에 인공지능을 적용해 보기로 하고 선친 및 이창우·김승권·백두권교수 등과 함께 연구한 끝에 업무상과실 형량결정 전문가 시스템을 89년 처음으로 개발,기능향상 작업을 계속해오다 이번에 최종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김 교수팀의 컴퓨터 재판작업 결과에 대해 국내 법관들은 『법의 생명은 논리가 아니고 경험이므로 컴퓨터에 의한 양형결정은 법관의 자유심증을 해치게 된다』며 『피가 통하지 않는 컴퓨터 재판은 있을 수 없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컴퓨터가 아무리 인공지능을 채택한다 해도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며 『그러나 법관들이 재판의 참고자료로 이 시스템의 양형결과를 참조하면서 주관을 갖고 판단한다면 형량의 편차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김승일기자>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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