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전당대회 시발… 막오른 선거전/카터 “후보 품격·진실성 내가 보장”/당내 「다른 목소리」 규합 선봉 역할/“올해는 여성파워의 해” 이색 선거구호【뉴욕=김수종특파원】 매디슨 스퀘어가든을 중심으로 한 맨해턴이 동성연애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그룹에서부터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을 비난하는 한국교포 그룹의 데모에 이르기까지 정치집회로 요란스런 가운데 빌 클린턴을 백악관으로 보내기 위한 민주당 전당대회는 뉴욕의 여름밤을 열기로 몰아넣고 있다.
14일 이틀째 접어든 민주당 전당대회를 보면서 첫날 느꼈던 「정치쇼」의 인상을 수정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시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가장 적절하게 살아 숨쉬는 곳이 전당대회라는 사실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미국같이 방대한 나라에서 정당의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또 수렴되는 에너지의 폭발은 이같은 전당대회가 아니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대통령후보가 부각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소위 「떠오르는 태양」이 누구누구인지가 선보여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첫 기조연설을 한 빌 브래들리 상원의원(뉴저지)은 지켜볼 인물로 떠오른다.
매디슨 스퀘어가든에 모인 4천9백명의 대의원석을 바라보는 순간 스치는 인상은 여성파워이다. 대의원중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 대의원들이 구호를 소리높여 외친다. 미국의 언론들이 올해를 여성파워의 해로 부르듯이 민주당 전당대회의 발언대는 앤 리처드슨 텍사스주지사,바버라 매콜스키 상원의원에 의해 압도됐고,다이안 페인스딘 등 10여명의 상원출마 여성들의 출연으로 민주당과 여성표의 관계를 엿보게 했다. 2백년간 백인 남성클럽이라 불리던 상원이 올해 변화를 강요당하리란 진단은 이미 미국언론이 내렸었다.
14일 대회장에 에이즈환자와 동성연애자가 나와 연설한 것도,전날 성조기퍼레이드에 집없는 거지들이 참여한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만이 갖는 독특한 일면이다.
이날밤 매디슨 스퀘어가든의 주인공은 민주당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였다. 독특한 미소를 머금은 그는 『내 이름은 카터』라고 소개해 대의원들의 폭소를 자아낸후 레이건부시의 정책을 질책했다. 카터는 클린턴과 15년을 사귄 사이라고 말하고 『올해 예선에서 그의 품격에 대한 거짓되고 오도된 공격에도 살아 남았다』고 치켜 올렸다. 전당대회이후 클린턴의 아킬레스건인 품격과 진실성에 대한 보호막을 쳐주었다.
민주당의 진보세력을 대변하고 있는 제시 잭슨도 이날 「대통령 클린턴」이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클린턴고어팀을 충전시키는데 큰 몫을 했다.
결국 다양한 목소리가 조각 보자기처럼 표출되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민주당이 백악관을 탈환하기 위해 클린턴고어팀이 가자는대로 가야한다는 승자에의 순종이었다.
이날 채택된 정강정책은 더욱 클린턴고어 중심으로 짜였음을 말해준다.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강정책이 금방 천국이라도 될듯이 미사여구로 가득하다.
그러나 당의 정치공약이라는데서 휴지조각이 아님을 입안과정에서 알듯하다.
한국이나 일본 같으면 자리를 놓고 다툴 전당대회 협상과정이 미국에서는 정강에 소수파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남기려고 노력하는 것이 대조를 이룬다. 「미국 국민과의 새로운 맹약」이란 멋있는 제목이 붙은 정강은 진보서 보수로 선회하는 민주당의 변화를 읽게 해준다.
중산층 보호,자유기업과 시장경제의 신봉을 강조한 구절이 외국인에겐 웃음을 자아내게 하지만 미국의 언론들은 집권에 실패한 진보색채를 탐색하려는 노력으로 중요한 변화라고 대서특필하고 있다. 과거 모든문제를 대처하겠다는 식의 접근도 피해 효과적인 결과를 지향하는 정부를 표방한 것은 민주당의 과거와는 판이하다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평이다.
레이건부시의 경제정책 실패에 초점을 맞춘 것은 올해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경제문제임을 선명히 말해준다.
고급기술과 고임금에 의한 제조업 기반이라야만 미국경제의 위대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한국적 현실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대외정책에서 북한위협이 존재하는 한 미군주둔이 필요하다는 대목은 방위정책의 다른 부분과 더불어 민주당이 구태여 성공적인 부시의 대외정책을 쟁점화시키지 않으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전당대회에 참관한 현홍주 주미 한국대사는 주한미군에 대한 언급은 지난번 전당대회에 없었던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정강은 그러나 불공정무역에 대한 단호한 대처와 지구환경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한국에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클린턴이 고어를 러닝 메이트로 선정하면서 부각하는 이미지는 「소도시 소년」(small town kids) 출신이다. 전후세대가 사회의 중추세력이 되면서 중산층이 밀집해 있는 대도시 교외지역과 중소도시의 보수성향의 유권자를 노리고 있는 이들은 먼데일이나 듀카키스와는 다른 방향을 일으킬게 틀림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