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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파행/이재승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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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파행/이재승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2.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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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경제의 혈관이다. 피가 썩으면 생명이 위태롭듯 금융이 파행이면 그 경제는 위험하다. 의혹과 의심,불가사의가 양파껍질처럼 중첩돼 있는 「정보사땅사기사건」은 수사가 진행중이므로 앞으로 껍질이 얼마나 더 벗겨질지 모른다. 국민의 의혹을 풀어줄것이냐 아니냐는 검찰의 수사결과에 달려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벗겨진 껍질만으로도 추할대로 추한 치부가 드러난 기관이 있다. 금융기관이다.나라와 사회구석구석에 부조리와 비리가 틈입해있고 가치관과 윤리관이 뒤집혀있는 총체적인 윤리부재의 시대에 금융기관에 대해서만 어찌 독야청청을 요구하겠는가. 윤리와 가치관을 으뜸으로 해야하는 종교,교육,언론기관 등에서도 이따금 직업윤리관의 실종에 따른 물의가 빚어지고 있다.

금융기관에서 크고작은 창구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은행만해도 본·지점·영업소를 합쳐 시중은행 및 지방은행의 점포가 2천5백여개소를 상회한다. 원칙적으로는 없어야하는 창구사고이지만 가지많은 나무 바람 잘날이 없듯 양적으로 팽창하다보면 증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보사땅사기사건」에서 드러난 금융의 비리,부정,불법 등 탈법은 분노를 야기케한다.

들판의 불길처럼 확확드러나는 사건을 은폐하려는 거짓말의 경연은 자기방어의 본능이기는 하나 가증스럽다. 이번 사기극에 주·조연으로 관련,피해를 보게된 국민은행,제일생명,4개 신용금고들은 아예법규와 규정은 의식하지 않은것 같다.

국민은행의 관련자 정덕현대리는 제일생명이 예치한 2백30억원을 돈세탁하고 인출하는데 다양한 수법을 썼다. 이 수법들 가운데 하나가 돈은 실제로 이동하지않고 장부상으로만 입·출금하는것. 윤성식 제일생명상무의 국민은행 압구정 서지점 보통예금계좌에서 1백20억원이 이처럼 입·출금된것이 은행감독원 검사서 드러났다. 이 「유령거래」의 진의는 알려지지않고 있는데 사기단의 자금력과시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신고인감과 다른 인감으로 예금을 지급하든가 아니면 지점장승인없이 무통장으로 예금을 지급하는 방법을 썼다.

심지어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허위 예금통장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감탄할만한 기발성이 나타나는 수법들은 아니다. 이상한것은 정 대리가 그가 속한 지점이나 은행서 어떠한 위치를 향유했는지는 몰라도 마치 그 자신의 지점처럼 임의대로 문제의 예치금을 주물렀다는 것.

그는 이런 지위를 이용,관련계좌에서 수십장의 소액권수표로 예금을 인출한뒤 다른 계좌에 분산예치하고 이것을 다시 다른 계좌에 반복하는 방법으로 돈세탁을 한 것이다. 그가 사용한 실·차·가명의 계좌가 40여개나 됐다는것. 컴퓨터에 능한 그는 컴퓨터 게임하듯 한것이다. 지금까지의 검찰수사로 봐서는 국민은행에서는 정 대리만 관련된 것으로 돼있다. 몇십억,몇백억이 춤을 추는데 지점장이나 본점에서 몰랐다는 것은 일반에게는 설득력이 없다. 몰랐다면 관리체계가 잘못된 것이다.

은행의 공신력에 상처를 주는것이다. 이번 사기사건 흑막의 열쇠를 갖고있는 것으로 추측되고있는 제일생명은 정보사땅 매입추진과정서부터 사고발생시까지 보험회사가 지켜야할 「자산운용준칙」을 완전히 무시했다.

이 규칙은 보험사가 업무시설용 부동산을 매입코자할때 부동산가액이 20억원 이상일때는 계약체결후 10일 이내에 재무부장관에게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일생명은 정보사땅의 매입가격이 6백60억원이었으므로 당연히 신고했어야한다.

또한 상호신용금고들은 동일인 여신한도 5억원규정을 어겼다. 우리의 금융권체계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낙후돼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화와 국제화는 계속 추진해야하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으로 금융근대화의 스케줄을 늦출수 없다. 그러나 의식과 관행의 개혁이 뒤따라줘야한다. 이를 위해서 금융정화의 차원에서도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가려 관련 탈법자나 기관에대해 엄격한 응징이 있어야할 것이다. 이번 사건이 금융의 정신개혁의 전기가 되어줬으면 한다. 너와 나를 가릴 것없이 직업윤리관의 회복이 없이는 경쟁력의 회복도 불가능한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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