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회있을 때마다 금융실명제의 도입을 주장해왔다. 현재 검찰에서 계속 수사중인 「정보사땅 사기사건」은 다시 한번 금융실명제 실시의 당위성을 말해주고 있다.이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사회로 전환되어 가고 있는 한국적인 과도기적 상황에서 나타나는 「권력형 사기극」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면에서는 금융사고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사건에 깊숙이 관련된 국민은행 대리는 제일생명이 예치한 2백30억원을 인출하는 과정에서 실·가명을 사용,무수한 돈세탁을 단행하여 족적을 없애려 한다.
우리는 돈세탁에는 통상적으로 철저히 가명계좌가 창구로 이용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부끄러운 돈일수록 가명을 찾는 것은 상례다. 기업의 비자금이나 공직자의 뇌물수수자금 등이 은폐물을 찾는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는 정치자금이 양성적으로 조성되는 규모보다 음성적으로 조성되는 규모가 훨씬 크므로 역시 가명계좌를 찾는다.
본질적으로 어두운 이러한 돈이 아니더라도 소위 증시,공채,사채시장 등에서 활동하는 큰 손들의 돈 역시 세율이 높은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가명을 선호한다. 종합과세 등 대형세금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서 금융실명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의 도입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이유에서 거부반응이 상당히 강력하다. 6공은 89년 실시를 목전에 두고 「보류」함으로써 사실상 이를 폐기했다. 여권의 지지계층이 되는 기업인,신흥부르좌,재산가 등이 극력 반대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음성 세원을 양성화,세부담의 형평을 기하고 사회기강면에서 부정부패를 척결하는데도 기여한다는 경제와 사회 정의의 실천의지가 크게 후퇴한 것이다.
실명제 반대자들은 또한 재산의 해외도피 또는 잠적과 이에 따른 금융·자본시장의 파동을 우려했다. 일시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있을 수 있으나 이러한 반응이 장기화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금융실명제가 계속 유보되는 경우 지하경제와 부정·부패가 지나치게 비대화,사실상 이를 실현하는 것이 영원히 불가능한 사태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지금은 경쟁력 회복이 우리 경제의 긴급한 과제다. 물론 금리와 임금상승의 억제,기술개발 등 경제요건의 개선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에 못지않게 필요한 것은 의식개혁이요 가치관의 복원이다. 이것이 없이는 경제적 효율을 높일 수 없다. 금융실명제의 도입이야말로 경제 정의와 능률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단계적으로 실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출범은 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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