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로스 페로를 좋아한다.만일 우리나라에 페로가 등장한다면,나는 그에게 한표를 던질 용의가 있다. 그 까닭은 그의 인기가 처음 부시 대통령을 앞질렀을 무렵,미국 유권자들이 밝혔던 바와 같다. 지난 6월초 뉴스위크와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유권자들이 페로를 지지하는 까닭중의 으뜸(52%)은 「다른 대선후보가 싫어서」였다. 마찬가지 까닭으로 해서,나는 차라리 한 페로를 기다리는 심정에 사로 잡힌다.
물론 페로가 한 때의 인기를 누린다고는 하나,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망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등장,그의 철학과 정치기법이 미국의 정치,특히 대통령선거의 양상을 아예 바꾸어버릴것만은 틀림이 없다.
페로의 정치철학은 한 마디로 요약될 수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정부 조직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까닭은,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주인된 책임을 저버린데 있다』
그의 정책도 아주 단순하다.
『쟁점 하나 하나가 중요한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본이 되는 생각이다』
그는 좀 엉뚱한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는 지금까지 두 차례나 개현론을 말했다. 재정에 관한 의회의 권한을 제한하여 증세입법을 못하게 한다는 것이 그 안목이다. 세금은 반드시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요컨대 나라주인의 의사가 분명하게 집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같은 주인의 의사는 어떻게 집약될 수가 있는가. 그는 컴퓨터 세일즈맨다운 방안을 제시한다. 소위 일렉트로닉(전자) 타운 홀 미팅(Town Hall Meeting=마을회관회의) 이란 것이다.
타운 홀 미팅은 미국식 민주주의 전통의 뿌리다. 고장의 크고 작은 일을,주민 모두가 타운 홀에 모여,의논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다.
페로의 전자 타운 홀은,이 방식을 인구 2억5천만,넓이 약 1천만㎢인 미국 전역에 걸쳐 시행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진행된다.
▲세금·낙태 등 쟁점이 있을때,미팅을 연다. ▲정부관계자와 의회 지도자,그리고 전문가들이 모여 텔레비전 토론을 벌인다. 정부는 3∼4개의 정책안을 제시한다. ▲유권자들은 텔레비전을 보고,쌍방향성 수상기에 장치한 버튼을 눌러 정책을 선택한다. 미팅용 엽서를 써서 의견을 우송할 수도 있다. ▲이 결과를 컴퓨터로 처리한다. 그 내용을 선거구별로 정리하여 제시한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싶고,이 방식이 유권자 모두의 뜻을 정확하게 반영할까 싶기도 하지만,비슷한 전례가 없지도 않은것이 미국이다.
그중 하나는 80년 대선때 레이건과 카터의 텔레비전 토론이다. 토론 직후,시청자들에게 전화번호 2개를 제시하고 어느쪽이 이겼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번호를 골라 전화하게 한 것이다. 결과는 레이건 승리였다.
또 하나의 예는 지난 연초 CBS가 부시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시청자의 의견을 묻는 프로를 방영했을때,30만통의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방송국의 전화가 붐비지 않았다면 3∼4백만통의 전화응답이 있었으리란 추정도 나와 있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전자 타운 홀이 결코 공상의 산물만이 아님을 말해준다. 그것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정보화 사회의 정치는 참여민주주의가 되리라고 한 전망을 선취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적어도 지자단체 수준의 전자 타운 홀은 머잖아 실현되고,이에 따라 기초단체 의회는 없어지게 되리란 것이 진작부터 나와있는 전망이다.
페로는 전자 타운 홀과 비슷한 기법을 선거운동에도 십분 활용해왔다.
대선출마 여부를 1백회선 8백개의 전화번호를 통해,일반 유권자에게 물은 것이 그 시초다. 그가 연설을 할때는 그 광경이 인공위성을 통해 전국에 방송한다. 현재 3백70만개나 보급된 접시안테나를 통하여,방송국의 재단을 거치지 않은 「페로신화」가 직접 유권자에게 전달된다. 그는 3만명의 유권자를 한데 묶는 전화토론도 기획하고 있다.
이런 기법은 당연히 공화·민주·양당의 선거전략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시 대통령측은 매주 비디오 뉴스를 6백여개 텔레비전 방송국에 제공한다. 클린턴은 퍼스널 컴퓨터를 이용한 정책토론을 진행한다. 모두가 이른바 정보화시대의 정치가 어느 쪽으로 흐를지를 보여준다.
물론 페로 투의 전자정치가,풀뿌리민주주의의 재생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인지,아니면 그것이 오히려 권력에 의한 조작과 통제의 위험성을 시사하는 것인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그것이 의회민주주의를 뿌리채 흔들것이란 염려에 까닭이 없지도 않다.
그러나 앞으로의 정치,정보화시대의 정치가 어떠할지는 이미 정해져있다고 해도 틀림이 없다. 그 때가 되면 정치인끼리의 정치는 더 이상 통하지를 않는다. 그들의 대표성도 의미가 달라진다. 그들의 정치독점은 끝장이난다.
우리 정치의 후진성은 이런 면에서 더 두드러진다. 정보화시대 초입에서 시대에 걸맞는 정치를 생각 않은 것이다. 한 페로를 대망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 있다. 시대에 걸맞는 정치의 깨달음을 위한 자극이 아쉬운 것이다.
그래서 페로의 전자 타운 홀이 지금 가능한다면,우리 국회를 장기 공전시키고 있는 쟁점쯤,국민들이 하루 아침에 결판 낼 수도 있을 것임을 생각한다. 꼴불견인 우리 정치는,전자기술의 발달을 기다리지 않고는 구제불능일까 하는 안타까움도 함께 맛본다.<상임고문>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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