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한대로 운수업 투신/계열사 10개의 재벌부상/제일생명이 그룹매출 75% 차지/철저 가족경영… 재계 노출꺼려하영기 제일생명 사장이 정보사부지 매입건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그룹의 오너인 박남규회장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제일생명을 주축으로 한 조양상선그룹이 어떤 그룹인지,그리고 박 회장이 어떻게 기업을 일구어 왔는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 회장은 평소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재계의 크고 작은 모임에도 전혀 얼굴을 내밀지 않아 「한국의 하워드 휴즈」로도 불리는 어두운 이미지의 기업인이다.
지난 89년 그룹의 주요 계열사 경영을 2세들에게 물려주고 경영일선에서 한발짝 물러나 더 이상 재계에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박 회장은 1920년 경남 밀양의 가난한 농가에서 3형제의 맏이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국민학교와 농잠학교를 졸업한 그는 14세때 가난을 피해 일본 고베로 건너갔다. 3년여 일본생활에서 작으나마 돈을 쥔 박 회장은 귀국해 일본군이 쓰던 군용트럭 한대를 버스로 개조,운수업에 뛰어들면서 오늘날 10여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총수로의 둥지를 틀었다.
그가 조양상선을 모체로한 운송재벌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해방 이듬해 설립한 천일정기화물이 모체가 된다. 이어 천일여객이 설립됐고 60년대 들어서는 조양상선의 전신인 이안상선을 설립,육지와 바다의 수송체제를 갖췄다.
이안상선은 63년 조양상선으로 이름을 바꾸고 한일 항로를 확보,기반을 닦았으며 71년에는 삼익선박을 인수,외항선 17척을 거느린 대형 선사로 발돋움했다.
해운업으로 착실히 기반을 닦던 박 회장은 73년 서정귀(작고)로부터 이번에 문제가 된 제일생명보험과 계열인 남북수산·낙동흥업 등을 인수,본격적인 재벌대열로 올라섰다.
그는 80년대 해운 합리화 조치로 대부분 해운회사들이 통폐합되는 과정속에서도 특유의 내실경영으로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조양상선그룹의 계열사는 조양상선 제일생명보험 진주햄 등 10개로 지난해 그룹전체의 매출액은 금융 보험을 모두 포함할 경우 2조8백27억원이었다.
그러나 이중 제일생명보험의 매출이 1조5천5백억원으로 전체매출액의 75%에 달해 제일생명보험이 그룹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임을 알 수 있다. 특히 91년도 순자산 4천억원 이상의 그룹에 대해 지정되는 대규모 기업집단에 지정됐으나 금융 보험사를 제외한 순자산은 4백억 수준이어서 제일생명이 조양상선그룹의 최대이자 유일한 자금파이프라인 역할을 해왔다.
조양상선그룹은 또 동일인 특수지분과 계열사 지분이 78대 재벌평균 46.4%를 훨씬 뛰어넘는 64.1%로 철저한 가족경영 형태를 띠고 있다. 조양상선그룹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가족은 박 회장의 2세 4명과 동생,조카를 비롯,사돈인 제일생명 하 사장 등으로 이들 가족이 거의 모든 계열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
장남인 재익씨는 조양상선을,차남인 재우씨는 삼익종합운수,3남 재복은 진주햄,4남 재준은 남북수산 등으로 사실상 분가까지 마친 상태다.
또 동생인 남도씨는 천일정기화물,조카 한태희씨는 우성산업,제일생명보험은 알려진대로 사돈인 하 사장이 대표로 있다. 김치열 전 내무장관도 박 회장과 사돈관계로 제일생명보험의 고문직을 맡고 있다. 철저한 가족경영체제를 고수하면서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있는 박 회장이 이번 사건을 언제부터 알았는지,매사에 철저한 그가 이 사건에 얼마만큼 개입됐는지를 밝히기 위해서는 노출을 꺼리는 그가 직접 나서서 밝혀야 할 부분이다.<이종재기자>이종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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